0. 프롤로그
‘그 스님은 환승을 잘 하셨을까?’
저는 업무상 출장이 많아서 KTX를 자주 이용하곤 합니다. 가깝게는 천안, 오송, 대전. 멀게는 대구, 포항, 부산, 창원, 여수 등 서울과 여러 지역을 이어주는 편리하고 유용한 교통수단 KTX. 목적지, 승차 요일과 시간대에 따라서 비즈니스 승객이나 관광객 등 다양한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라 흥미롭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만큼 좌석을 잘못 찾아온 사람으로 인한 해프닝도 종종 있었는데요. 빈번하게 경험한 것은 좌석번호는 같지만 호차를 착각한 경우(예를들면, 7호차 7A 승객이 8호차 7A 좌석에 탄 경우)였고, 그 외에는 예매를 다음 날짜로 잘못했는데 승차는 그 전날에 한 경우도 있었답니다.
어느 날, 제가 서울역에서 탄 열차가 오송역에 정차한 후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한 스님이 오셔서 저한테 어떻게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겁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제게 스님은 10시16분에 오송역에서 출발하는 티켓을 내보이시는데, 그 시간이 10시17분이었고 호차와 좌석번호도 동일한 것이 뭔가 이상하긴 했습니다. 스님과 제가 동시에 당황한 모습을 캐치한 옆자리와 앞자리 승객들까지 가세해서 두 티켓의 오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왠만해서는 다른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요즘 사람들 분위기와 사뭇 달랐던 그 두 사람의 합세는 스님의 당황하신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였을까요?
여하간, 아주 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 스님을 제외한 3명은 동시에 오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탄 열차의 운행 시간표를 살펴보면서, 당초 10시9분에 오송역을 출발했어야 했던 기차가 7분 지연되어서 10시16분에 출발했다는 것을 확인했고요. 앞좌석 여자 손님과 옆좌석 남자 손님은 우리가 탄 열차와 스님의 열차 번호가 다르다는 것을 캐치했습니다. 그제서야 다시 보니 우리 열차는 포항역이 종착지인데, 스님의 티켓은 오송->신경주 구간이었습니다. 우리 열차는 신경주역에 정차하지 않는데 말이죠.
스님은 경유지와 목적지를 확인하지 않고, 10시16분이라는 시간만 확인하고 열차에 오르신 것이죠. 계속 난감한 표정을 짓는 스님에게 옆좌석 남자 손님이 ‘대전역에서 내려서 갈아타시면 되요.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위로를 해 드리자, 스님은 안도하며 객실 밖 복도쪽으로 걸어가셨습니다.
대전역 정차 이후에 열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할 때, 스님은 잘 내리셨는지. 신경주 가는 다음 열차로 잘 갈아 타셨는지 궁금해지더라구요. 만약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기라도 해서 대전역에서 환승을 못했을 경우에는 한 번 더 환승 기회가 있는지 코레일 어플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동대구역에서 환승 기회가 마지막으로 있긴 하더라구요.
창밖으로 산과 들, 주택가, 도로 풍경들이 빠르게 바뀌는 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금 경험한 열차 승차 오류와 환승이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 말이죠. 우리는 때때로 목적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어떤 일들에 뛰어들기도 하고, 환승 타임을 놓쳐서 엉뚱한 곳으로 계속 가기도 하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게으르거나 용기가 나지 않아서 환승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는 없는지 반성도 되었습니다. 당장 1~2시간 내에 신경주와 포항이라는 서로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일과 관련된 환승은 차질 없이 되겠지만, 5년이나 10년 뒤의 환승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는 차질 없이 환승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스님은 환승을 잘 하셨을까?’라는 오지랖에서 시작된 질문은 결국 제 자신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저는 환승이 필요한 삶의 순간마다 무사히 환승을 했었는지?’, ‘앞으로 환승이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용기 있게 환승하려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새로운 고민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