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과 사람 사이 01
실패 브리핑 회의
언제나 완벽해지고 싶고, 완벽을 추구하는 나에게 실수나 실패는 감추고 싶은 나쁜 것이었다. 남들이 알아채기 전에 빨리 수습해서 그런 실수와 실패가 없었던 것처럼 위장하기 바빴고, 아무 일 없었던 듯 능청스럽게 행동하려고 했다.
그런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만화의 한 장면이라면, 100톤짜리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모습 같은 일이었다. 2004년 여름, 일본의 장애아동 전담 병원에서 연수를 받을 때, 전 직원이 참여하는 주간 회의에 참석했는데, 지난 한 주 동안 자신이 했던 실패와 실수에 대해 숨김없이 낱낱이 말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어떻게 자신의 실패담을 저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저런 상황이었으면 속상하고 창피해서 나의 실수를 숨기기에 급급했을테고, 적어도 최소화해서 말했을 것 같은데...
직원회의가 끝난 뒤에 원장님과의 개별 수퍼비전 시간(코칭 시간)에 이 부분에 대해 질문했고 원장님 말씀이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실패나 실수가 없었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일을 잘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았던 것, 기존 방식과 다른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실수나 실패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새로운 시도와 노력에 대한 격려에 더불어, 다른 직원들이 실수했던 것을 참고해서 유사한 실패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실패담을 공유하는 회의를 이끌고 있어요.”
나는 그동안 실수나 실패는 나쁜 것이라고 규정짓고 있었는데, 실패의 과정과 결과를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그 원장님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매우 찔렸다. 실패가 두려워서 과감한 도전을 하지 못했던 시간들, 무난한 결과가 예측되는 안전한 시도만 했었던 나에 대한 성찰도 더불어 할 수 있었다.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책 <인생의 목적어>에 이런 대목이 있다. ‘실패했다. 앞의 두 글자를 보지 마십시오. 뒤의 두 글자를 보십시오. 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받을 일입니다.’ 일본의 그 원장님 말씀도, 정철의 이 메시지도 나의 삶 전체에 큰 용기를 불어넣어 준 소중한 이야기들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이 일 이후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계획서가 완성되지 않아도 새로운 일에 뛰어들 용기가 생겼고, 조금씩 테스트 겸 실행을 하면서 계획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노하우도 쌓이기 시작했다. 일단 뛰어가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병행하다가 그 방향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재빨리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순발력도 생긴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불안과 두려움, 완벽해지려면 항상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그보다 더 큰 해방감이 없었다.
지금도 나는 종종 혼자서 실패 브리핑을 해 본다. 달콤한 간식으로 당충전을 해 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