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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 많은 유목민 Jan 20. 2021

인간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

# 예술이야  01 : 삶을 바꿔놓은 문화예술  


    나의 직업은 인간의 삶과 행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사회복지사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에 대한 탐구와 실천은 직업병이자, 내 삶의 중요한 중심축이기도 하다.  '행복의 원천'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나는 항상 ‘이해 본능’ 레이더가 작동한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지는 물론, 무엇을 좋아하는 지,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와중에 내가 직접 알든 모르든 어떤 누군가의 행복에 작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 때 정말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발견하거나 추구하는 방법이 제각각 다르다. 동일한 상황에서 느끼는 행복의 크기나 밀도감도 서로 다르다. 어쩌면 정답이 없어서 더 흥미롭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 만큼 다양한 모습의 행복이 존재하는 것 같다. 때로는 삶을 바꿔놓는 에너지가 되는 행복! 그런 행복을 찾아가는 수없이 많은 길 중의 하나인 문화예술! 


    삶에 큰 의욕이 없었던 한 여중생이 있었다. 내가 담당했던 미술 장학사업에 참여했던 여중생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가세가 기울었고, 본인이 바라던 미대 진학의 꿈도 수포로 돌아가자 자살 충동이 수시로 밀려왔다고 했다.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까지 친구들에게 보낼 정도로 심각했었는데,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 상금으로 미술학원에 다시 다닐 수 있게 된 것이 꺼져가던 꿈의 불씨를 되살려 주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을 그 학생의 어머님께 들었을 때 큰 감동이 밀려왔다. 


    내가 한 역할은 그저 청소년들이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잘 참여할 수 있게 뒤에서 이런저런 지원을 하고, 수업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변화무쌍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그 아이들을 묵묵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관심 가져 주고 응원해 준 것뿐이었는데, 한 생명을 구하는 데에 일조했다고 해 주시니 어찌나 기쁘던지.                



    남자 초등학생의 경우에도 걸핏하면 아이들과 다투고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해서 학교에서도 복지관에서도 문제 아동으로 낙인이 찍혀 있는 경우였다. 하지만, 그 아이의 변화는 연극 수업을 통해서 차츰차츰 나타났다. 그동안은 다른 친구들과의 대화에 서툴렀고 성격이 급했기 때문에 폭력적인 행동을 했지만, 연극을 통해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법이나 자기 생각과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는 것이다. 

    1년간의 수업과 마지막 발표회까지 마치고 각자의 소감을 나눌 때 “이제는 주먹보다 말로 해요! 옛날 같았으면 치고받고 싸웠을 텐데 이젠 다른 친구들하고 안 싸우니까 학교 선생님도 깜짝깜짝 놀라세요. 예전에는 다른 친구랑 조금이라도 스치면 화냈는데 이제는 화도 안내고요. 그냥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말도 안하냐’고 웃으면서 그냥 말해요. 그리고 여기 연극 수업 때에 했던 것처럼 친구들이 얘기를 다 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다음에 제 마음이 어떤지 말할 수도 있게 됐어요”라며 웃어 보일 때 무척 보람찼다.         


     발표회 장면도 잊을 수 없다. 국악, 미술, 연극, 음악을 각자 3년 동안 배우면서 갈고 닦은 재능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는 자리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실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아이, 두근두근 설레어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합주를 맞추어 보는 아이.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 낯선 아이들이었지만, 멋지게 해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펑펑 울고 있었다. 뭔가 실수해서 속상해서 우는가 걱정되어서 달래주러 갔더니 “박수 소리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학교에서도 복지관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주목받아 본 적 없었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그 아이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잘 한 것에 박수를 치는 관객의 입장이었다고 했다. 늘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박수였고 언제 끝나는지 지겹게 느껴졌던 발표회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이 된 자신을 향해 쳐주는 박수 소리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무대에서 큰 박수갈채를 받았던 그 날을, 더 이상 시끄러움이 아닌 짜릿함으로 아로새겨진 박수소리를 마주한 그 날을, 그 아이는 오래도록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나에게 에너지가 되는 여러 경험이 많은데, 그런 것들이 내가 계속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서 문제 해결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나의 미약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어 정말 기쁘다. 이렇게, 사회복지사로서 느끼는 행복의 깊이와 크기를 생각하면, 이 직업을 택한 이후의 최대 수혜자는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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