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디에 남을까."
2인실 입원실 병상에 누은 그가 내게 말했다. 나는 병원 흰 천장을 보고 있었다. 볼사람도 없는 TV는 켜진 채로 국회에서는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앵커의 말이 나오고 있었다.
"내 인생이 싸구려 신파극으로 끝날줄 몰랐어."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슬프지도 화나지도 않았다. 그가 아프고 난 이후로 우리 관계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가 여유가 없었는지 내가 여유가 없었는지 아니면 둘 다 여유가 없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했던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투병기를 많이 찾아봤었다. 희귀병을 앓는 남자친구나 남편에 뒷바라지를 하는 여자들 눈물 겨운 사연들 박수치고 감동하고 그게 마치 - 됐다.
나는 기분이 나빠서 생각을 멈췄다.
"마음이 남는다고?"
가시 돋힌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멀쩡했던 때도 그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게 어디에 있을까. 마음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뇌에 있을까 심장에 있을까. 그런류의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
"이젠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구나."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나는 답했다. 이제서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데.
"너는 끝까지 나한테 그렇게 말하고 싶어?"
또다. 또 대화는 이런 식이다. 그가 아픈 이후로 쭉.
"끝이라."
슬픔보다는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이러면 안되는데 라는 죄책감은 이젠 없었다.
'그거 잘 됐네. 드디어 끝난다니.'
생각만하고 나는 말을 입밖으로 내진 못했다.
"지겨워. 좋아질지도 모른다고 헛된 희망을 가지는 거."
"마음이 어디에 있냐고 했지? 잘 모르겠어."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이제 네가 죽고나면 널 어떻게 기억할지도 모르겠어. 아는 게 전혀 없네."
나쁜 말을 하고 싶었다. 매몰차게 말하고 싶었다.
"너는 늘 멍청했지. 전혀 나아지질 않네. 걱정.... 내 주제에 네 걱정은 뭘하겠냐."
그가 웃는다. 징그럽게도 웃는다. 그는 나랑 만나면서 좋게 웃어본 적이 없다. 알바생이 실수를 하거나 앞에 걸어가던 할머니가 넘어지거나 그런 일을 봤을 때 그는 활짝 웃곤 했다.
"그래. 이제서야 주제를 알게 되었네."
고소했다. 이러면 안되나 싶었지만 내 마음은 그랬다. 똑똑한 척은 있는 대로 다하더니 본인의 최후도 모르고 싸구려 신파극? 아니 주제 모르고 까불던 영웅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그리스식 영웅담이 더 어울린다.
"그렇게 말해야 겠어?"
또 뭔가를 던질 듯한 눈빛으로 그가 나를 쳐다본다. 전처럼 두렵지 않다. 힘도 없는 게 뭘 던진다고.
"멍청이 말이니까 무시하면 되잖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함없었다.
"좋은 대답이네."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병실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