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언젠가 느꺼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김곤'을 좋아하는 나는 김곤의 팬클럽인 길티클럽에 가입을 하고 회원들과 모임을 가지게 된다. 김곤은 촬영장에서 아동학대 논란이 있는 상황이 있는 상황이고 팬클럽 내에서도 이에 관해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 대하여 나는 김곤을 옹호한다.
그 이후 김곤은 공식석상에서 해당 사건에 대하여 허리를 굽히고 사죄를 하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안에서 무언가가 터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치앙마이에 여행을 간 나는 발톱과 이빨이 제거된 호랑이를 보고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됨을 느낀다.
"그런 사람을 왜 좋아하는 거야?"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을 보여줄 때가 있다.
나락 간 유튜버가 6개월이 지나서 복귀를 하니 원상복구가 되어 있다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애들이 멀쩡하게 활동하고 다닌다거나 하는 경우.
26년 새해에도 다양한 연애인, 샐럽들이 제각각 다양한 이유로 나락에 갔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로 길티 플레저라는 표현이 있다. 죄책감이 들지만 즐거움이 느껴지는 그런 묘한 감정을 나타내는 말인데. 다이어트 선언을 하고 야식을 먹는다던가 아니면 고기 잔뜩에 소스 잔뜩 뿌린 기괴한 먹방을 본다던가 하는 데서 오는 감정을 말한다. 나는 문제가 있는 연애인이나 유명인을 좋아하는 것도 길티 플레저라고 생각한다.
'나락에 간 연애인을 좋아하는 즐거움. 세상 모두가 적이어도 나는 그의 편이라는 사명감 그리고 세상에 대한 반발심.'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히 '김곤' 이라는 감독을 좋아하게 된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팬모임까지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팬 모임에서 나는 실망을 한다. 말이 통하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허영에 차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팬덤 내부에서 나와 대화가 통하던 사람은 김곤의 행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김곤을 옹호하고 그녀를 나무란다.
나는 이부분에서 소설의 나는 김곤이 잘못을 했더라도 그 문제에 대해서 사과를 하지 않기를 바란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내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데 감독의 도덕성은 크게 상관이 없는 요소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나락에 간 영화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고고하게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호랑이를 홀로 흠모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입증된 것도 없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믿어야죠. 우리는 그래야 되는 거 아녜요?
결국 내가 김곤을 믿었던 건 김곤의 작품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진영논리랄까. 팬클럽에 논리랄까. 옹호를 허거나 비판을 하거나 적이거나 친구거나. 논리에 의하기 보다는 내가 그 인물을 얼마나 좋아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들.
끝으로 소설에서 나는 발톱빠진 안전한 호랑이를 보며 그 감정에 대해서 다시 곱씹는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느끼는 쾌감. 한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잘 표현한 단편소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