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글입니다.
편한 군생활은 없다고 하지만 내 군생활은 달랐다. 계룡대는 계룡시에 위치한 국직부대로육군, 해군, 공군이 한 부대에 있었다. 나는 계룡대 예하 부대에서 근무했다. 내가 있던 곳은 업무도 편했고 분위기도 널널했다. 불침번도 없었고 유격도 하루만 받았다. 3군이 함께 있다보니 혜택이 많고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천국에도 그림자가 지는 법이다. 편한 군생활이라도 그 안에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은 당연히 존재했다. 내 경우에는 옆분대 해군인 이정환 상병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나와 굉장히 다른 사람이었다. 만일 군대가 아닌 밖에서 만났다면 실수로라도 친해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관심사부터 말투 생활 습관까지 모든 게 달랐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말 많은 사람은 싫어하지 않는다. 재미없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말 많고 재미없는 사람은 정말 싫어한다. 이정환 상병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부대에 하나쯤은 늘 있는 사람. 조폭하고 알고 지낸다고 말하고 다니며 틈만 나면 음담패설을 뱉어내는 그런 종류의 인간.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와 나는 생활관도 다르게 근무지도 달라서 크게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마주침에도 그 역시 내가 싫었던 모양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나는 행동도 굼뜨고 얘기를 해도 반응도 없고 선임 말에 귀도 안 기울이는 폐급후임이었을 테니까.
군필자라면 알겠지만 군대에는 흡연장 정치가 존재한다. 흡연을 하는 병사들이 모여서 '얘는 어떻더라 쟤는 어떻더라.' 이렇게 품평을 하고 그 여론이 각 생활관으로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3생 신병은 애가 빠릿빠릿하다는 얘기가 많아."
"걔는 일병 말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 김병장님이 말하시더라."
대강 이런 얘기가 도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그런 흡연장 정치에 참가할 수 없었다. 나에게 흡연장은 각 생활관 별로 청소구역이 바뀔 때마다 청소해야 할 청소구역 중 하나였다.
"용은아. 너 안 좋은 소리 많이 나오더라."
점심 식사시간 우리 근무지인 행정반 공군 선임인 정병장이 말했다.
"저 말입니까?"
"그래. 야임마. 너 말이야. 어제 담배 피는데 네 얘기가 나오더라."
"그렇습니까?"
내 대답에 정병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걔네들이 나한테 네가 어떤지 물어보길래. '애는 멍청하지만 착하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점심시간 동안 나는 PX에서 커피와 담배 과자등을 사서 정병장에게 주었다.
"아이고. 그래 뭐 이런 걸."
"저 커버 쳐주시는 건 정병장님 뿐이지 않습니까."
"자식. 많이 컸네. 많이 좋아졌네. 근데 너 특히 안 좋게 보는 건 정환이라는 거 알지? 기회 되면 걔한테나 잘해줘. 나한테만 이러진 말고. 여튼 애들하고 잘 먹을게 고맙다."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계속 돌았다. 일을 똑바로 안 한다더라. 애가 이기적이라더라.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왜냐하면 국방부 시계는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은아. 나도 전역을 하는구나."
"축하합니다. 정병장님."
"됐어. 이제 걍 지용이 형이라 해."
지용형이 전역을 함에 따라 나는 대대 행정반에서 최고 고참이 되었다. 정지용 병장이 전역하고 얼마 안 된 토요일 오후 이제는 병장으로 진급한 이정환 병장이 우리 생활관에 나를 불쑥 찾아왔다.
"충성."
"아니 됐어. 밖에서 얘기 좀 같이하자."
나는 그를 따라 흡연장으로 갔다. 긴 한숨 후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은아. 나는 너 좋게 생각하는 거 알지? 내가 너 안 좋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야. 솔직히 여기 고참 중에 너 이뻐했던 건 지용이 형 밖에 없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나는 네가 더 나은 군생활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하는 말 기분 나쁠 수 있는데 너 행정반 왕고되더니 요즘 좀 그래. 간부들도 널 안좋게 보고 있는 거 알지?"
이정환 병장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너 안 좋은 소문 많이 돌아. 그건 알고 있지? 그러다가 다 너 싫어하게 될 거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과 동시에 내 입이 움직였다.
"싫어하라고 그러십쇼."
"뭐?"
"저 싫은 사람은 계속 싫어하셔야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지만 기왕에 뱉은 거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
"이정환병장님이 저 생각해 주시는 건 알지만 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 싫어하셔야지. 뭐 어쩌겠습니까."
내 말에 그는 말문이 막혔는지 말없이 그저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수고하십쇼. 더 하실 말이 없으면 저는 생활관에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날 얘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안좋은 소문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 안좋은 소문은 내게 까칠하고 인성이 좋지 않은 행정병이란 이미지를 가져다 주었고 오히려 업무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가 어떤 말을 하고 다니는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정환병장도 별일 없이 전역했고 나도 별일 없이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