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에그이즈커밍(나영석, 신원호 PD가 소속된 제작사) 이명한 대표의 인터뷰를 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다. '결국엔 능력 있는 동료들이 나와 함께 일하려면 일뿐 아니라 인간적 관계에서의 공명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느끼죠. 관리자로 일할 때 이 부분이 강점이 됐어요.'(출처 : https://www.folin.co/article/5425) 덕장이라 불리는 이명한 대표는 리더로서 직원들에게 '안전감'을 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읽고 너무 감동받아 따로 필사해 둔 적이 있는 것을 기억해 냈다. 김민철 작가(당시 TBW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내 일로 건너가는 법>에 나오는 이런 내용이었다. '작가 대니얼 코일은... 연구 끝에 그는 최고의 팀을 만드는 세 가지 요소를 말한다. 그리고 그중 첫 번째 요소로 꼽는 것이 바로 '당신은 이곳에서 안전하다'라는 소속 신호다.'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필사하고 난 후에 형광펜으로 표시까지 해두었다ㅎ 그렇다. 그만큼 나는 소속된 팀에서 안전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다.
일하면서 안전감을 느껴봤던 때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내가 신입이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나는 국가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나라 예산으로 진행하는 사업인 만큼 사업 내용은 물론 정산이 매우 중요했다. 돈을 1원도 허투루 쓸 수 없었고 모든 지출에는 증빙이 붙어야 했다. 당연한 거지만, 막상 이걸 실제로 해보면 얼마나 짜치고 괴로운 일인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ㅠ 여하간.. 챙겨야 할 게 많긴 하지만 어쨌든 단순 업무에 가까운 일인지라, 정산은 막내였던 내가 맡아하고 있었다. 전체 사업에 대해 선배들이 지출하는 내역을 전부 확인하고 통장 잔액과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내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리듬을 타며(신입 때의 나는 늘 약간 신나 있었음) 통장 금액과 정산보고서를 대비해보고 있던 나는 헉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통장 잔액과 정산 내역에 3원 오차가 있었던 것이다! 미친 듯이 자료를 뒤져 이유를 찾아보니, 3원 절삭된 채 집행된 세금계산서가 있었는데 그걸 반영을 못해서였던가.. 뭐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기억조차 희미함). 입사한 후 처음으로 맡은 업무에서 엄청나 보이는 실수를(!) 한 나는 순간 너무 무서웠고 나랏돈을 잘못 계산해서 감사과에 잡혀가는 상상까지 했다(철컹철컹).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때의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사업 전체의 책임자였던(사실상 리더 역할을 했던) 선배님에게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선배님, 저 너무 고민되는 게 있는데 잠깐 따로 말씀 좀 드릴 수 있을까요?' 사무실에서 내 실수와 그에 따른 엄청난 오차(3원)를 발언하기 힘들었던 나는 그렇게 나보다 한참 높은 직급의 선배님을 회의실로 불러냈고ㅎㅎ 자료를 잔뜩 들고 가서 울상으로 이러이러한 실수가 있어서 정산내역과 통장잔액에 3원 오차가 났다, 큰일이다 하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당시 선배님의 반응은 뭐, 예상대로.. '야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였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 봐도 3원 오차는 참 별 것 아니다ㅎ 3원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흔히 절삭되는 금액이 누락된 정도라 지적받더라도 주의 정도이지 그 이상의 처분을 받을 리 만무했다(실제로 지적 안 받고 넘어감). 그렇게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가 취한 행동이었다. 신입인 내 입장에선 엄청 큰 실수로 생각한 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물론 그 앞에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팀 리더에게 상담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나는 당시 팀 리더였던 선배님을 신뢰했으며, 팀 안에서 내가 보호받고 있다고(안전하다고) 느꼈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숨기거나 대충 커버하려고 하지 않고 리더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보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선배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신입이 자신의 실수를 숨기지 않고 바로 보고했기 때문에 수습할 여지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이 사건에서는 수습할 일이 없었지만ㅎ). 그만큼 팀 안에서의 '안전감'은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사실 신입 때 겪었던 부서를 제외하고 내가 이 '안전감'을 느꼈던 부서는 별로(거의) 없었다.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뭐 예상대로다. 방어적으로 일하게 되고, 모든 일을 할 때 혹시 잘못되면 (내가 독박 써서) 책임지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고, 리더가 뭔가 지시했을 때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되고... 뭐 그런 식이다. 아직 나는 리더 역할을 할 연차도 아니고(공공기관 기준) 직급도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팀원에게 안전감을 주는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과연 그런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역시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팀원에게 안전감을 느끼게 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은 확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