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닌 거 같아도 꽤나 별 거랍니다.
오늘은 간만에 긍정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어떻게 하면 신입 직원이 업무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내 경험을 기반 삼아 몇 가지 적어볼 것이다. 반드시 이래야 된다,는 아니고 나는 이런 경험을 했는데 그랬더니 주인의식이 생기더라, 정도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다. 그냥 내 좋았던 기억(?)을 정리해 두는 목적으로 시작하지만, 같은 팀에 신입을 받는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
내가 신입사원이었던 시절, 내 업무를 총괄하는 선배님은 나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분이었다(엄마아빠까지는 아니고 이모... 정도?). 대학도 아직 안 졸업한 2n살짜리 사원이 얼마나 애 같아 보였을까? 더군다나 나는 인턴 경력도 전무했던 쌩 신입이어서, '결재'가 뭔가요?의 상태였다.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나.. 싶었던 사원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업무 총괄이었던 선배님은 나에게 업무를 시킬 때는 꼭 존댓말을 썼다. 그분보다 훨씬 어린 다른 선배님들이 편하게 반말로 업무를 지시하던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아무래도 'ㅇㅇ야, 이거 엑셀로 내일까지 정리해 줘'라는 말과 'ㅇㅇ씨, 이거 엑셀로 내일까지 정리해서 저한테 주세요'라는 말은 듣기에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다. 존댓말로 하는 업무지시를 들었을 때, 훨씬 내가 같은 회사원으로서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선배님이 나에게 항상 정중한 존댓말을 쓴 것은 아니었다. 점심을 먹을 때나 회식 자리 등 편한 자리에서는 'ㅇㅇ씨, ㅇㅇ란 제목의 책 읽어봐 요즘 이게 유명해'와 같이 반말로 편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다만 ㅇㅇ야라고 부르지는 않고 꼭 ㅇㅇ씨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선배님이 나와 거리를 두려고 존댓말을 쓰는 게 아니라, 정말 업무할 때는 나를 존중해주고 싶어서 존댓말을 쓰는 거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반드시 존댓말로 업무 이야기를 해야 존중받는 기분을 느끼고 그 반대의 경우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일하면서 수많은 선배들을 거쳤고 그중에는 반말로 이야기하지만 정말 좋은 선배, 존댓말로 이야기하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선배도 있었다. 다만 내가 신입 때 경험했던 선배님이 존댓말로 업무 이야기를 했던 게 내 회사원으로서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데 도움이 되었던 확실한 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도 아무리 어린 신입사원이 와도 말을 낮추지 않는 편이다.
보통 신입이 오면, 각 팀원들이 맡고 있는 업무의 보조역할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A차장이 A업무를 하고 있고 B과장이 B업무, C업무를 하고 있고 C사원이 D업무를 하고 있다면, 신입인 D에겐 A와 B와 C와 D업무 모두의 보조업무(회의록 쓰기, 잡무 하기 등)를 맡기는 식이다. 하지만 내가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 총괄이었던 선배님은 업무조정을 통해 A차장이 A업무, B과장이 B업무, C사원이 C업무, D사원이 D업무를 맡게 했다. 즉 굉장히 작은 업무일지라도 하나의 단위업무를 통으로 신입에게 주어서 책임감을 가지고 그 업무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담당하게 했던 것이다.
언뜻 들으면 '그냥 업무 하나를 덜어내려고 신입한테 떠넘긴 거 아니야?' 싶을 수도 있다. 실제로 선배님도 나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서(내 일 덜하려고 그래) 나에게 업무를 배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업무를 하다 보면 그렇지가 않다. 모든 업무의 보조업무만 맡은 신입은 늘 잡무와 회의록 정리만 하게 되지만, 나는 하나의 단위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기본계획부터 시행문까지 다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그걸 할 때마다 총괄 선배님에게 코칭을 받았다. 틀린 점을 바로잡아주고, 어색한 부분은 바꿔주고... 결국 내 업무량은 비슷했지만 선배님의 업무는 늘어난 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다른 팀 신입사원과는 달리 나는 단위업무를 혼자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회사생활에 두고두고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신입일 때 있었던 부서는 운영하는 회의(협의체, 위원회 등)가 많은 부서였다. 신입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이 회의 저 회의의 회의록 담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정식 회의 참석자가 아니라 회의록 쓰는 보조 담당자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회의가 이루어지는 메인 자리가 아닌 뒤쪽에 앉곤 했다. 사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의록을 작성하는 막내는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나쁜 사람들이라 그런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그러나 당시 나와 같이 일했던 총괄 선배님은 내가 처음 회의에 들어갔을 때 참석자 분들(다른 회사의 되게 높으신 분들이었다)에게 일일이 나를 소개했고(우리 팀에 들어온 ㅇㅇ씨입니다), 나한테도 꼭 회의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켰다. 회의가 끝나고 식사 자리가 있으면 나도 참석시켰다. 나를 그 회의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때 당시에는 좋긴 하면서도 뭐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했다. 다른 회사의 어려운 분들과 인사하는 것이 쑥스럽고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건 신입이었던 나에게 엄청난 인적 자산을 남겨주신 거였다. 실제로 그때 회의에 주기적으로 참석했던 타 회사의 높은 직급 분들은 나라는 사원이 누군지 인지하게 되었고(주기적으로 만나고 밥도 먹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내가 그분들을 섭외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흔쾌히 참석해 주셨다(이미 아는 사이였기에 섭외가 훨씬 수월했다). 지금도 이때 생각을 하면 선배님에게 정말 감사하다.
여기까지가 내가 신입일 때 경험했던,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게 된(ㅎㅎ) 계기들이다. 운이 좋아 좋은 선배님 밑에서 신입 때 교육받으며 일해서 당시 업무난이도 극악의(야근 많음, 골치 아픈 일 많음) 부서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일하는 게 꽤나 즐겁고 뿌듯했다. 이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지금도 나는 후배들에게 위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원칙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 인정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게 신입사원이 회사에 정 붙일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큰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