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누군가의 악의에 맞닥뜨렸을 때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 익명게시판에 내가 작성했던 보고서를 공격(?)하는 글이 올라온 사건이었다. '공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 그 글에서 지적한 부분은 단순 오기인 데다 전혀 중요한 사항이 아니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부분이었다(예를 들자면 50페이지짜리 보고서에서 딱 한 장에서만 2023년을 2022년으로 잘못 기재한 것 같은). 그런데 그 글의 작성자는 그 문제를 지적하면서 엄청 비꼬고 보고서의 생산자(나)를 무시하는 말을 적어 전 직원이 볼 수 있는 익명 게시판에 게시한 것이다. 누가 봐도 그 글의 작성자가 이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별 파장 없이 지나갔다. 다만 나는 내상을 좀 입었다. 그 글의 내용에 상처받은 것은 아니었다(너무 사소한 오류라 내 실수에 대해 자학할 거리도 안 되었다). 누군가 나에 대해 그런 글을 쓸 만큼이나 큰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좀 충격이었던 것이다.




사실 회사는 놀러 오는 곳이 아니라 돈 벌러 오는 곳인 만큼, 업무상 엮이는 같은 회사(or 다른 회사) 사람들과 항상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부담되는 일을 맡겨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내가 억울하게 일을 더 떠맡기도 한다. 선배 또는 후배와 업무상 도움을 주고받으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친한 사람/좋아하는 사람과 사이 안 좋은 사람/싫어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는 회사생활을 하면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모두를 좋아했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몇몇 선배들이 해야 하는 업무조차 내가 다 떠안고 처리하곤 했었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나서는 이 업무들이 원래 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에게 업무를 미루는 팀장/선배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왜 팀장님은 이 업무가 A차장님 업무인데 나한테 시키시는 거지? A차장님은 왜 자기 업무를 자기가 안 하고 나한테 미루는 거지?'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문제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조차 미움받고 싶어하지 않는 내 성격에서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자기 업무를 나한테 대신하게 하는 A차장이 있다고 하자. 나는 A차장님을 너무 싫어해서 다른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A차장님 이름만 나와도 정색하고 험한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A차장님에게 대놓고 싫은 티를 내거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등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내가 증오하는 사람에게조차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하는 내 착한 아이 콤플렉스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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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David Clode



재미있는 것은,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에게조차 사랑받으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회사 안에서 사이가 나쁘거나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 회사에서 십 년을 일했는데 그 안에서 사이 나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게 TV에 나올 만한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에게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개인적으로 정말 큰 사건으로 다가올 정도로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는 나를 싫어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나는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내 비방 글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답은 '그럴 리가요'이다. 솔직히 그날 퇴근하는데 손이 막 떨렸고(분노 때문에), 밤에는 누가 그런 글을 썼을까 고민하느라 잠이 잘 안 왔다. 나에게 그만큼의 악의를 가진 사람이 회사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와 인사하고 같이 일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그 느낌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제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어른'이니까,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고,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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