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타로에 의지해보기로 함
모 월 모 일 모 시에 태어난 나라는 사람은요...
인생에서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방황하고 있다. 내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또 앞으로 내 인생을 살 사람도 나밖에 없어서 이 결정이 너무나 어렵다. 나를 아끼는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와닿지 않고, 무척 의지하는 상담 선생님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아 보아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거대한 운명의 결정(!)을 오로지 나 혼자만의 판단으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던 나는 급기야 대학생 때 이후 약 20여 년만에 사주와 타로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집 근처에 있는 사주타로 보는 곳에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겸 들렀다. 7~8월에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 관련된 운이 들어와 있다고 해서 처음엔 솔깃했다. 하지만 배경설명을 들으시더니 밖에서 늘 듣는 이야기를 사주타로집에서마저(!) 늘어놓으시기 시작했으며 급기야는 내 사주에 따르면 40~50대가 힘들 것이라는 예언까지 하셔서 나를 좌절하게 했다. 아니야.. 이 사주는 진짜 내 사주가 아닐 거야(?)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는 40~50대에 힘든 거면 그냥 인생이 힘든 거 아니냐고!
사진: Unsplash의petr sidorov
여하간 도저히 그 결과를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이번엔 강남역 근처에 있는 나름 유명해 보이는 신점/사주 보는 곳에 추가 예약하고 방문했다. 그곳에서 나는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그렇다, 결국 나의 이 사주타로 여행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에 대한 확신을 누군가에게 대신 듣고 싶어서 시작된 것이었다. 강남의 역술가 분은 내가 하고 싶어하는 바를 정확히 맞춘 것은 물론, 지금 당장 그 일을 행해야 한다고, 때가 중요하다고 부추겨주시기까지 했다. 역시 그렇죠? 역시 해야 하는 거죠?... 이상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실행해야 한다는 그 한 마디를 들으면 나는 되게 행복하고 만족할 줄 알았는데, 어째 씁쓸했다. 니가(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불행히도 내 사주타로 여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인을 통해 사주타로 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마치 게임 과금하듯이 틈만 나면 소액 과금을 통해 사주타로 앱에 내 운명을 검색해 보기에 이른다. 앱이라고 해서 결코 저렴하지는 않다. 유-명 역술가가 입력한 데이터를 통해 사주를 보는 경우에는 어지간한 오프라인 상담비만큼의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본 사주타로의 결과에 만족했냐 하면은 역시나.. 결과는 반반. 아주 마음에 쏙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엥 이게 뭐야 싶은 내용도 많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결국 뻔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유명 역술가에게 내 운명을 물어본다 한들, 그 사람이 '정답'을 말해줄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인생에 '정답' 같은 게 존재할 리도 없다. 그 사실을 알지만서도..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내 마음의 갈피조차 잡을 수 없을 것 같으니 자꾸만 사주타로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나 대신 답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도 않을뿐더러, 내 인생의 선택을 대신해준다 한들 그 선택에 대한 책임까지 대신 져주지는 않는다. 내 인생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모든 뒷감당은 나 스스로 해야 한다. 이 깨달음을 사주타로에 무려 n십만 원을 투자하고 나서야 얻게 되었으니 나도 참 미련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나인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