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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을 계산해 보기로 함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직장인 3대 거짓말이 뭐더라. 나머지 하나는 생각이 안 나는데 여하간 앞의 두 개는 '퇴사'와 '유튜브'였던 것 같다. '나 퇴사하고 유튜브 할 거야!'가 직장인 대표 거짓말이라고 하니 말 다했지. 나 역시 매일매일 직장인 3대 거짓말 중 방금 쓴 두 가지 거짓말을 외치고 다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나 진짜로 퇴사할 거야. 내년엔 정말 퇴사할 거야. 퇴사하고 유튜브 할 거야.' 이미 유튜브는 하긴 하고 있으니(멈춰있지만), 어떻게 보면 퇴사만 거짓말일 수도 있겠다. 


  퇴사는 정말 거짓말이었다. 약 3년 차 때부터 '퇴사'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한 번도 구체적으로 퇴사 플랜을 짜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퇴사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정년까지 다닌다는 선배들의 농담을 철썩같이 믿고 정년퇴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랬던 나였지만... 최근 달간은 정말 고민이 많았다. 그렇다. 지난 건의 글에서 고통스러워하며 고민하고 있다던 결정은 퇴사에 관한 것이었다. 공공기관을 30대 후반에 다음 스텝 정해진 없이 퇴사하는 것. 나는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사진: Unsplash의 John Matychuk



  왜 고민하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중요하지만 지금 쓸 일은 아닌 것 같다(진짜 퇴사하게 되면 그때는 쓸 수 있을지도).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진지하게, 퇴사하게 되면 벌어질 일을 상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아 나 퇴사할래! 너무 힘들어!'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퇴사하게 되면 뭘 챙겨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퇴사하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 일 리스트를 만들었다. 일단 복지 포인트를 미리 다 써야 하고, 올해 분의 건강검진을 미리 받아야 했다. 매년 연말에 받던 건강검진을 올해는 당겨서 7월에 미리 받았다. 건강보험료 관련해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바뀔 테니 바뀌고 나서도 낼 수 있도록 여분을 마련해 두었다.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역시나 퇴직금이었다. 


  20대에 지금의 공공기관에 입사해서 한 번도 이직하지 않고 지금까지 다녔으니, 어쨌든 퇴직금이 쌓이긴 쌓였을 터였다. 그런데 우리 기관의 연봉 시스템이 하도 복잡하여(아니면 내 머리가 복잡하게 받아들여) 네이버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퇴직금계산기로 단순 계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재 기준 제 퇴직금이 얼마죠?' 하고 인사팀 급여담당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전사에 내가 퇴사할 거라고 소문이 나는 것을 각오해야 하니까. 결국 나는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결정한다. 집 근처 노무법인에 방문예약을 하고 퇴근 후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릴 수도 있어 보이는 노무사 두 분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음료수를 내어주셨다. 나는 내 인적사항이 모두 담긴 서류들(지난 1년간 내가 받은 월급명세서, 원천징수내역서 등등)을 그날 처음 만난 노무사 두 분에게 건넸다. 두 분은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고 퇴사 시기에 따라 내가 받을 수 있는 퇴직금 내역을 계산해 주셨다. 혼자 했으면 절대 쉽게 계산할 수 없었던 것이기에 전문가에게 상담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토서류를 들고 노무법인 사무실을 나설 때 정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궁금하던 것을 알게 되어 시원한 마음이 드는 한편, 내가 정말 퇴사라는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다. 생전 처음 보는 노무사에게 내 연봉 정보를 다 보여줄 만큼 퇴직에 대해 스스로가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서글퍼졌다. 


  그래서 결국 어찌 되었냐 하면은.. 나는 퇴사를 결정하지 못했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제 건강검진도 받았고, 퇴직금도 계산해 두었고, 업무인수인계자료까지 거의 다 써서 퇴사를 결정하기만 하면 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나의 자아는 얼마나 비대한지, 그 비대한 자아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더러운 일들을 매일 8시간씩 견디며 사는 것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이제 그런 것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 퇴사 고민도 이제까지의 수많은 '퇴사할래' 거짓말들의 심화 버전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해놓고 또 정년까지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긴 한다. 하지만... 퇴직금까지 계산해보는 경험은 나에게 회사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실감할 수 있게 했다. 그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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