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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발을 만들어보기로 함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뭔지 고민해 보기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지난달의 나는 충동적으로 8월 마지막날에 하는 비즈발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하고야 말았다. 할 일이 많아서 허덕대고 있던 8월 말의 나는 생각했다. '정말 한 치 앞도 못 보는 나의 일정 관리구나^^'라고.. 뭐 어쨌든 피곤함에 쩔어 있던 나는 밍기적밍기적 자리에서 일어나 홍대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어느 여름날부터 내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을 지배한 것이 바로 '비즈발'이었다. 비즈발은 말 그대로 비즈를 꿰어 만든 발(가늘고  대를 줄로 엮거나 따위를 여러  나란히 늘어뜨려 만든 물건주로 무엇을 가리는  쓴다. 네이버 국어사전 발췌)로, 약간의 일본풍과 레트로한 감성이 더해져 삭막한 집안을 꾸미기에 바람직한 장식물로 여겨졌다. 심지어 만들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지 뭐야. 나만 혹했던 건 아닌지, 어느새 비즈발 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는 (인스타) 계정들이 많아졌다. 이번 원데이 클래스는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먼저 팔로우했었던, 센스 넘치는 디자인의 비즈발을 많이 가진 계정의 선생님이 하는 클래스여서 기대가 되었다. 




  수업 시작시간보다 살짝 늦어서 헐레벌떡 들어간 교실에서는 이미 비즈발 만들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슬쩍 자리에 앉아 수업에 합류했다. 비즈발은 사이가 벌어져있는 특이한 형태의 바늘에 실을 연결하고 그 실에 구슬을 하나하나 디자인에 맞추어 끼워 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바늘과 실을 연결하는 것을 어려워해 좀 헤맸지만,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뜨개질과 비슷하게 느껴져 금방 적응하였다. 내가 도안을 보고 그에 맞는 색의 구슬들을 엮어내자 어항 속에 들어가 있는 금붕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재미가 있었다. 다만 시간 내에 다 하지 못하여 2/3 정도 완성한 금붕어 비즈발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이틀은 만들어지다 만 비즈발을 책상 밑에 던져둔 채 방치했다... 가 문득 이러다간 영영 완성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 저녁 갑자기 거실 테이블에 색색의 구슬들을 펼쳐놓고 비즈발 만들기에 돌입했다. 그리고 몇 줄 더 이어가던 나는 깨닫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재미가 없다는 사실을!


사진: UnsplashCatrin Johnson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그대로 수행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지겹지? 흰 구슬이 한 줄에 몇 개가 들어가는지 세어서 그 개수대로 실에 꿰어내는 일이 왜 즐겁지 않은 거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나는 의외로 정해진 규칙대로 그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칙이 생기는 순간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확 올라와서, 그 과정이 취미가 아니라 스트레스(=일)가 되더라. 반면 얼마 전까지 3주간 다녔었던 플라워클래스에서 플로럴폼에 내가 원하는 대로 꽃을 배치하는 건 의외로 재미있었다. 나는 규칙이 없이 흩어져있는 꽃들을 예뻐 보이게 센스 있게 배치해서 꽂는 것을 스스로 잘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수강생들 중에 내가 항상 제일 빨리 끝냈고(그만큼 고민을 덜하고 금방 꽂아냈다는 뜻)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뭘까. 그 고민을 살아오면서 참 많이 했다. 10대 때는 대학생이 되면 그만하겠지 생각했고 대학생 때는 취직하면 그만하겠지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이 고민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여하간 회사를 절실히 그만두고 싶은 요즘도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해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두 가지에 대해 너무 스스로 한계를 지어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힘들어하고 싫어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플라워클래스는 스트레스 하나도 없이 너무 즐겁게 수행한 반면, 재미있어하고 힐링될 거라고 생각했던 비즈발 만들기는 은근 스트레스받아서 끝까지 완성하느라 꽤나 고생했다(심지어 마무리는 혈육의 도움을 받아서 함). 어쩌면 인생의 다른 수많은 task들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그간 어려울 거라고, 또는 내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서 도전조차 해보지 않았던 여러 일들이 사실은 내 적성에 맞는 일이었던 건 아닐까. 그게 내가 비즈발을 만들어 보면서 얻은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역시 새로운 도전은 나를 발전하게 한다.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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