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요? 혼자 이걸 다요?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늘 '책을 내보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만큼 책을 낸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의미를 가졌다. 출판사 선생님들의 눈에 들어올 정도로 값진 글을 써서, 내 책을 위해 여러 명의 전문가가 달라붙어 작업을 하고, 그 결과로 나온 책이 교보문고 광화문점 매대에 깔리는 상상! 글 쓰는 사람 중에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꽤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독립출판에 대해서는 솔직히 관심을 별로 갖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출판사의 로고를 달고 나온 책이 교보문고에 깔리는 것이었지, 책 자체를 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을 '독립출판'이 아닌 '기획출판'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그래서 독립출판 강의를 들었던 것은 순전히 충동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소설 공모전에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도 자꾸만 떨어져서 좌절했던 순간의 내가 욱하는 마음에 '그래, 내 책 내가 내지 누가 내주냐!' 하는 심정으로 독립출판 워크숍에 신청했는데 덜컥 등록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한 번 참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인디자인을 배우고 책 기획서를 쓰고 있었다. 평소 브런치로 많은 이야기를 써왔으므로 책에 들어갈 글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브런치에 있던 글 중 가장 책으로 만들기 적합해 보이는(또 책으로 만들고 싶은) 덕질 에피소드들을 잘 골라내 인디자인으로 편집했다. 같이 만드는 사람들끼리 으쌰으쌰 하면서 진행하다 보니, 몇 달 후 내 손에는 가제본이 들려 있었다. 이것이 7월까지의 이야기이다.
그 후에 인쇄를 맡기고 책을 손에 받아보고 전국의 독립서점에 잘 배포했답니다~라고 쓰면 이 글이 해피엔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월 초인 현재 나는 아직도 인쇄소에 메일을 보내지 못했다. 망할 놈의 완벽주의와 불안이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이지 책을 사랑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랑해 왔다. 그러니 '책'에 대한 내 기준은 또 얼마나 높을 것인가? 이사할 때마다 '아이고 이 집에는 책이 정말 많네' 소리를 듣는 사람이니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전국의 책 만들기 석학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책들만 보고 자란 나이기에, 내가 손수(정말로 내 손으로) 디자인한 표지나 내지가 마음에 쏙 들 리가 없었다. 내 책이면 애정이 샘솟아서 무조건 예뻐 보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래도 마음에 안 들고 저래도 마음에 안 든다. 그게 인쇄를 못 들어간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 결정할 것이 너무 많은데 불안해서 결정을 못 하겠다. 내지의 폰트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글자 크기는 몇으로 할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앞뒤의 면지는 무슨 색으로 할지 표지는 무슨 재질의 종이로 할지 등등등.. 혼자 책을 만드니 혼자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수십 가지가 넘었다. 책을 만들면서 1인 창업자의 마음을 조금 이해했다. 누군가 대신 답을 내려줬으면 싶을 정도였다. 여전히 표지의 제목 위치는 어떻게 하는 게 맞을지 제목에 박을 넣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쇄를 못 넣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나는 오늘 중으로 인쇄를 요청하는 메일을 인쇄소에 보낼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결정을 못하고 지지부진할 스스로를 예측이라도 한 듯이 10월 중순 독립출판 페어에 참가 신청을 해뒀기 때문!(허허) 10월 중순에는 무조건 완성된 책을 팔러 나가야 한다. 그러니 인쇄를 앞두고 한없이 작아진 스스로를 잘 다독여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여하간 독립출판을 또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책을 만들면서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너무 많이 해서 말이지. 또 모르지. 공모전을 줄곧 떨어지면 소설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 덧붙이는 말 : 예상하셨다시피 책 편집에 압박감을 느끼느라 정신이 없어서(...) 연재일이 하루 늦어졌습니다. 기다려주셨던 분들께 죄송하고 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과연 다음주에는 연재일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빠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