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분 뭐라 말할 수 없어
지난 10월 중순, 내가 만든 글들을 모은 책을 인쇄했고 인쇄한 책을 들고 독립출판 페어에 나갔었다. 원래는 페어 끝나고 바로 전국의 독립서점에 입고문의 메일을 보내려고 했지만 여전히 책들은 집 한 구석에 쌓여있는 상태이긴 하다.. 어쨌든, 이전 글에서 쓴 대로 내 첫 책 <왜요? 제가 덕질하는 사람처럼 보이나요?>는 페어에서 1n권 판매라는 쾌거를 이뤘다!(한 권도 못 팔 거라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놀라운 성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열몇 분의 손에 내 책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짜릿하다. 지난주 주말 오랜만에 만난 나의 포토샵 선생님(책 표지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신 그분 맞다)께도 내 책을 선물로 드렸다. 그렇게 내 책을 많은(?) 분들에게 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겁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책을 팔기도 해 보고, 선물로 드리기도 해 보았지만, 내 책을 누군가 읽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상상은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글을 쓰고, 그걸 편집해서 책으로 만들고, 책을 전해주는 것에서 끝났으니까. 그다음에 책을 받은 각자의 읽는 행위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그런데, 포토샵 선생님께 책을 드린 다음날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스타 알림이 떠서 들어가 봤더니 선생님이 책을 읽고 감상을 쓰신 것을 발견했다. 책을 내는 과정을 함께했던 만큼 그간 내 노력을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도 너무 감사했지만.. 무엇보다 책을 금방 읽었다고 하시며 맘에 드는 부분을 펼쳐서 인증해 주셨던 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쓴 책을 정말 읽어주셨구나! 그걸 깨달았을 때 말 그대로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선생님의 책 인증 인스타에 갑자기 스멀스멀 궁금증이 이어졌다. 혹시.. 독립출판 페어에서 책을 사가셨던 1n 명의 천사님들(로 칭하기로 함) 중에서 어딘가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신 분이 있지 않을까?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혹시 몰라하는 마음으로 포털에서 내 책 제목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어찌나 떨리던지... 그런데 정말 기적과도 같이, 글 하나가 있었다! 블로그에 어떤 분이 내 책을 읽고 매우 길고 정성스러운 감상평을 써두신 게 있었다. 그 글을 발견했을 때 가슴이 어찌나 쿵쾅거리며 뛰던지.. 내 책을 누군가 읽고 긍정적인 감상을 게시까지 해주신 게 믿을 수 없이 행복했다. 정말 감사하다.
사진: Unsplash의Luca Upper
쓰고 나니 이게 뭔 수상소감 같은 글인가 싶지만..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만큼 내 책을 누군가 읽고 그 감상을 표현해 주는 데서 온 행복감이 어마어마했다. 어어어 하다가 얼결에 책을 쓰고 세상에 내놓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할수록 점점 확신하게 된다. 나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글을 쓰고 그 글을 누군가 읽어주는 것에서 참된 행복을 느끼는구나. 십 수년간 회사를 다니고 생활하면서는 절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이런 작은 일에서 폭발적으로 느낄 때마다 슬프지만 처절히 실감한다. 나는 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