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사람들이 내 브런치를 알게 되는 공포

가장 무서웠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느낀 점은


'사내 연애는 회사 복사기도 안다'는 말이 있다. 사내 연애는 전혀 아니었지만, 나에게도 회사 사람들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그렇지만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브런치를 포함한 내 모든 글들이었다. 회사에서의 나와 달리 브런치에서의 나는 자유로웠다. 하고 싶은 이야기 대부분을 글로 풀어두었다. 물론 그 이야기 중에는 회사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내용도 있었고, 회사에서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나의 덕질 생활도 있었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에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절대 말하지 않고 수년을 버텨 왔다. 회사 사람들 아무도 내 브런치의 존재를 모를 거라 굳게 믿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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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Michael Dziedzic



퇴사를 결심할 때 가장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브런치의 존재로 시작되는 나의 글쓰기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퇴사 이유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 많을 것 같은데, 내 머리로는 아무리 굴려봐도 '글쓰기 위해 퇴사합니다'라는 사실에 기반한 답변밖에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직처라도 있으면 당당하게 이직으로 인한 퇴사라고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이 생퇴사하다 보니 회사 사람들이 이후의 내 삶의 계획을 매우 궁금해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유학이나 요양 같은, 완전한 거짓말은 또 하기 싫었다. 거짓말도 하지 않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은 숨기려다 보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인사에 얽힌 몇몇 분들에게 퇴사를 이야기할 때는 내 글쓰기에 대해 당연히 먼저 얘기하지 않았다. 왜 퇴사하냐는 물음에 '제가 사실 글을 쓰고 얼마 전엔 책도 냈는데요'라고 말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얘가 로또라도 맞았나 하는 의구심 가득한 눈빛들을 받으면서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같은 팀 선후배님들에겐 미리 퇴사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서 같은 팀에서 친한 차장님에게 커피 타임을 신청했다. 차장님한테 퇴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유는 비밀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는데, 차장님의 대답이 이랬다. "나 지원 씨가 왜 퇴사하는지 알 것 같은데?" 순간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차장님에게 조심스럽게 "왜...요?"라고 묻자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답이 나왔다. 글 쓰려고 퇴사하는 것 아니냐고. 알고 보니 차장님은 얼마 전에 내 브런치에 우연히 접속했는데(내 글 중 공기업 사람들이 검색할 만한 키워드를 가진 글이 많다), 글을 보다 보니 아무래도 본인이 아는 김지원인 것 같아서 혼자만 조용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특히나 내가 신입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쓴 글들이 있었는데 그때 차장님도 같은 팀이었어서 알아볼 수 있었다고. 나는 매우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웃겼다. 내 글을 차장님이 읽었다니! 뭔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두 세계의 세계관이 충돌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사실이 탄로 난 이상, 차장님에게 상담할 것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물었다. "퇴사하기 전에... 회사 분들한테... 브런치나 책에 대해 말하는 게 나을까요?" 차장님의 대답이 웃겼다. "글쎄... 내가 알게 된 걸 보면 지원 씨가 말 안 해도 어떻게든 사람들이 알게 되지 않을까요?" 그랬다. 사실 책을 내면서 브런치에 당당하게(?) 내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은 순간부터 사람들이 알아볼 가능성은 너무 커졌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김지원이 작가인데 회사에 대한 묘사가 아무리 봐도 우리 회사다' 싶을 확률이 극대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절친한 회사 사람들은 내가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퇴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뒤에서 글을 쓰고 책도 냈다는 걸 내 입이 아닌 다른 경로로 들으면 약간이나마 상처받을 것 같아 신경 쓰였다. 이 이유가 컸다.


결국 나는 차장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후 약 한 달간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을 해나갔다. 회사의 친한 선후배들에게 퇴사 소식을 말하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고 책도 출간했음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몇몇 분들에게 이야기하자 당연히도(예상했듯이) 소문은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가 전사 직원들이 나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내가 영원히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알게 되었겠고 그 점은 유감스럽지만... 그 점을 제외하곤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느 정도는 좋았다! 친한 동료 중 몰래 글을 써온 것에 대해 서운해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다들 글을 쓰다니 대단하다고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특히나 책을 낸 것에 대해서는 정말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점심시간에 사 온 책을 가지고 내 자리로 와서 사인을 받아가신 분들도 많았다(광화문 교보문고의 판매량을 늘려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렇게 책에도 썼던 나의 이중생활(회사와 글쓰기 자아를 분리하는)은 허무하게 내 입을 통해 종료되었다. 아마도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회사 동료들에게는 계속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퇴사라는 이벤트가 생기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회사 사람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거의 유일한 비밀을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긴 했다. 역시 나는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한 선후배님들이 내가 글을 써온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해주시는 것에 크게 감동받았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 다뤄보겠다). 여하간 다소 허무한 결론이지만, 그렇게나 무서워했던 회사 사람들이 내 브런치를 알게 되는 일은 결국 벌어졌고,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솔직하게 글을 쓴다. 물론 이건 결국 내가 퇴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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