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시기도 있었지만, 그렇지만.
가족 같은 회사. 내가 지난 십삼 년간 다녔던 회사의 특성을 이보다 잘 설명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옆팀 김차장네 둘째가 수능을 잘 봤는지 못 봤는지를 전사 직원이 알 수 있는 회사였다. 공기업 특성상 이삼 년에 한 번씩 부서가 바뀌는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몇 년 다니면 각 팀별로 친한 사람 한두 명은 있게 마련인 게 내가 다녔던 회사였다.
사진: Unsplash의Jamez Picard
나는 이런 회사에 대해 가끔, 아주 가끔은 ‘가 족같은 회사’라 말하곤 했다(발음주의). 팀 점심시간에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꺼낸 몇 마디 근황이 곧 내가 알리고 싶지 않았던 (내가 싫어하는) 동료의 귀에까지 들어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내 사생활을 숨겼다. 점심시간마다 몰래 브런치에 덕질 관련 글을 쓰고 그게 기반이 되어 책까지 출간했지만, 그조차 회사 사람들에게는 절대 비밀로 했었다. 회사에서의 ‘김지원 과장’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한 자락도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실 퇴사를 선언할 때도 나의 회사 밖 생활에 대해서는 끝까지 비밀을 지키려 했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내 출간 사실을 알게 된 선배가 생겨, 반쯤은 강제로 회사 사람들에게 그간 나의 이중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이전 글 참고). 신기한 일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회사 사람들이 내 글쓰기와 출간에 대해, 마치 가족처럼 기뻐해 주었던 것이었다. 친한 선후배들은 물론이고 예전에 잠깐 같은 팀에서 근무했던, 별로 친하진 않았던 동료들까지 내 책을 사 들고 와 사인을 받아 갔다. 평소 글을 잘 쓰더니 이렇게 잘 되어 너무 기쁘다는 인사와 함께.
회사를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싫어했던 시기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회사의 장점은 광화문 교보문고가 가까운 것밖에 없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했다(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솔직히 꽤 큰 장점인 듯). 재미없는 업무를 하면서도 사람 때문에 버텼던 날들도 있었지만, 그만큼 사람에게 크게 상처받아 다시는 회사 사람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퇴사 과정을 거치며 다시 한 번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나 이 회사를, 이 회사의 사람들을 정말 사랑했구나 하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서운하고 마음이 아프고 했던 것이었다.
퇴사하는 날, 많은 선배와 후배들에게 손편지와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한아름 들고 집에 오면서, 나는 동료를 정말 가족같이 생각했던 회사의 문화가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너무나 친해 서로의 소식을 빈틈없이 알고 지내는 회사의 분위기에 단점만 있다고 굳게 믿고 마음의 빗장을 지레 걸어 잠궜던 건 내가 아니었을까. 작가 동기를 뒀다며 만년필을 선물해 주는 동기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가족 같은 회사,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아니 어쩌면 이런 나에게는 꽤나 좋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