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면직, 꼭 써보고 싶었던 그 단어

하지만 그 과정은 예상과 달랐지


의원면직. '본인의 원에 의해 그 직을 면한다'는 뜻이다. 공직자의 경우 사기업 종사자와 달리 반드시 의원면직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디테일은 잘 모른다. 난 인사팀이 아니니까. 과거의 내가 알았던 건, 내가 사직서를 내고 모든 것이 확정된다면 내 이름 옆에 '의원면직'이라는 글자가 박힌 인사 시행문이 전사게시판에 올라올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수년 전부터 그런 일이 벌어지기를 갈망해 왔었다.


퇴사를 선언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사실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원칙과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므로 친한 사람 그 누구에게도 퇴사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퇴사 약 한 달 전 부서장과 팀원들에게 제일 먼저 고지했다. 그리고 나선 인사팀이나 회계팀과 퇴사 시기를 조율하고 기타 등등 여러 절차를 밟았다. 여러 부서에 퇴사를 이야기하고 나서 어느 정도 소문이 퍼지긴 했지만, 내 예상보다 엄청난 속도이진 않아서 그 모든 절차를 진행하는 틈틈이 친한 사람들에게 티타임을 요청해 내 퇴사 소식을 알리는 일을 계속해 나갔다. 이렇게 차근차근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보통 인사 시행문은 시행 전날 올라오니, 그 전날까지 친한 선후배들에게 만나서 이야기해야겠다 생각하고 나름 시간 배분을 해놓았다.


brooke-cagle-ZuQnhpFjvHI-unsplash.jpg

사진: UnsplashBrooke Cagle



하지만 역시 회사는 마지막까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 내 의원면직 인사가 포함된 인사 시행문이 예상과 달리 며칠 전에 예고도 없이 전사게시판에 홀랑 올라와버렸다. 게시판을 확인하고 정말 당황했는데, 당황할 틈도 없이 사내 메신저가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사를 13년 다녔지만 메신저가 수많은 대화창과 쪽지를 감당 못해 다운될 것 같은 건 처음이었다. 아직 나에게 직접 만나 퇴사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소문도 듣지 못했다가 인사 시행문으로 처음 본 분들이 어리둥절 당황하며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렇게 되었습니다...'라는 대답뿐이었다.




이후로는 정신없이 마지막 한 달이 흘러갔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선후배 분들이 내 손을 꼭 잡고 미래를 응원해 주셨고, 티타임이나 점심약속을 엄청나게 잡았다(내가 인기인이라니!). 팀 내부에서는 내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정해졌고 나는 그분에게 인수인계를 했다. 팀을 옮기면서 인수인계할 때는 솔직히 '아 뭐 정 안 되면 내가 잠깐 와서 다시 알려주지 뭐' 하는 마음으로 했었는데 이번엔 그게 안 되는 정말 최종의 최종 인수인계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저것 세심하게 하려고 노력했다(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책상 위에 늘어놓았던 수많은 물품들도 틈날 때마다 버리거나 집에 가져왔다. 덕분에 마지막날에 큰 박스 없이 플라스틱백 두 개로 짐을 모두 뺄 수 있었다.


퇴사를 고민했던 기간 동안(어쩌면 그전부터) 나는 항상 나의 의원면직 인사 시행문을 열어보는 꿈을 꿨다. 얼마나 짜릿할까? 내가 원해서 그만두는 것이란. 하지만 막상 실행해 보니 마냥 신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시원하지만 아쉽기도 하고 신나지만 왠지 조금 우울하기도 했다. 심지어 전혀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올라오지도 않은ㅎㅎ 내 의원면직 인사는 그렇게 2025년 11월 1일 자로 시행되었다.




이전 11화회사 사람들이 내 브런치를 알게 되는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