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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May 26. 2023

팬과 연예인의 관계라는 건

너의 일상을 응원해, 밥잘잠잘!


  여전히 덕질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요즈음이다. 내 일상에서 좀처럼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없는 나날, 덕질대상이 주는 소식들이 유일한 활력소나 다름없다. 근래에 내가 덕질하고 있는 대상은 가수와 배우인데, 둘 다 어마무시한 갓생을 살고 있어서 늘 시들어 살고 있는 내게 좋은 자극을 주고 있다. 물론 본업(노래, 연기)을 잘해서 보는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기본이다. 


  덕질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보니, 팬과 연예인의 관계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팬이 일방적으로 연예인을 짝사랑하는 관계? 아니면 가수/배우라는 상품을 팬이 소비하는 것? 어떻게 말해봐도 긍정적인 관점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내가 덕질하는 가수/배우의 비슷한 모습을 보면서 팬과 연예인이 어떤 관계인지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겪은 일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가끔 늦은 밤에 팬들을 위해 라이브방송을 켜는데, 하루는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울컥하게 했다. "주말 지나고 이제 월요일인데 파이팅하시고요, 회사 다니는 분들.. 항상 응원합니다. 여러분도 저 응원하시잖아요. 저도 그래서 응원해요." 하루는 방송을 끄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감기 조심하시구요, 밥 잘 먹고 삼시 세 끼."

  또 다른 예시. 내가 최근 좋아하게 된 가수와 팬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가수는 그곳에서 소소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팬들은 주로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다. 그 공간에서 가수와 팬이 습관처럼 주고받는 말들이 있다. '그럼 오늘도 파이팅 하세요!' '밥잘잠잘!' 등등. 그중에서도 나는 '밥 잘 챙겨 먹고 잠 잘 자요'의 줄임말인 '밥잘잠잘'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몇 번인가 나도 용기를 내서 '밥잘잠잘이 제일 중요한 거 알죠?'라고 보낸 적도 있었다. 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가수는 '그럼요 잘 챙겨 먹고 잘 자야죠' 하고 대답하곤 했다.




  팬과 연예인은 엄밀히 말하면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이다. 연예인은 자신의 일을 하고, 팬들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그 의미를 확인한다. 팬은 연예인이 하는 일을 보면서 만족을 느끼고, 그 만족을 응원으로 표현할 뿐이다. 정말 냉정하게 말하자면, 처음에 언급했듯이 연예인이라는 상품을 팬(소비자)이 소비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위의 두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내가 본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단순한 생산-소비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마치 가족처럼 삼시세끼 밥은 잘 챙겨 먹고 있길, 악몽을 꾸지 않고 잠을 잘 자길,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길 바라는 사이. 대단한 성취까지는 아니어도 평온한 일상을 바라 주는 사이로 느껴졌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그 말들에 팬들은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연예인은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믿고 있다). 그 어떤 취미생활에서도 획득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팬-연예인 관계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진: UnsplashIan Schneider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연예인과 팬은 서로 모르는 먼 관계이다. 누군가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끼리 안부를 묻고 일상을 응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요즘같이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이 지옥에 가는 것처럼 괴롭게 느껴질 때, 자기 전에 좋아하는 배우/가수로부터 '힘들겠지만 내일도 출근 파이팅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 말에 의지해 힘껏 출근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내가 그들의 응원에 힘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체가 없더라도, 그 끝이 정해져 있더라도, 어쨌든 팬인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그것만으로도 팬과 연예인의 관계는 일견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오늘도 내 하루는 특별할 것 없이 정말 별로였다. 하지만 내 가수가, 내 배우가 '밥 잘 챙겨 먹고 잠 잘 챙겨자라'라고 말했으니, 그것만큼은 지키려고 노력해 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 가수가, 내 배우가 '밥잘잠잘'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길 기원한다. 별일 없는 일상을 응원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연예인과 팬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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