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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Jun 16. 2023

나 좋자고 하는 덕질에서 고통받기

덕질하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SNS에서 떠도는 '덕질유형 테스트'라는 것을 한 번 해봤다. 나는 '데스티니 덕후'가 나왔는데, '덕질도 현생도 적절히 신경 쓰며 행복하게 덕질하는 편'으로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는 뜻)력'이 만점이 나왔다ㅎㅎ


  실제로 나는 덕질할 때 최우선 가치(?)를 '어덕행덕'에 두는 편이다. 나 행복하고 좋자고 하는 덕질인데 거기에서 괴로움을 얻으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니 좋아할 때는 마음껏 좋아하고, 싫은 부분이 더 커지면 덕질을 그만둔다, 짜증 내고 화내면서 덕질하지는 않는다, 를 철칙으로 둔다. 그러나 인생과 마찬가지로 덕질도 내 마음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어서^^;; 결국 하다 보면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오늘은 그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덕질의 기본 속성 중 한 가지가 '과몰입'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덕질유형 테스트에도 '어덕행덕력'과 같이 '과몰입력'이 속성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었다) 덕질을 시작하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해 매우 집중하며, 사소한 손짓, 눈빛 하나하나에 (좋은 쪽으로)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그냥 아는 배우/아이돌/게이머였던 사람은 '내 배우/내 아이돌/내 게이머'가 된다.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며, 그의 성공에 마치 나의 성공인 것처럼 기뻐한다. 이런 '과몰입'은 덕질대상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내 삶에도 한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가 딱히 뭔가를 하지도 않았는데 내 아이돌이/배우가 행복한 기분을 선물해 준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사진: UnsplashElizeu Dias



  문제는 덕질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누구든(보통 사람이니 누구라 칭해본다), 그 사람도 사람이기에 좋은 일만 겪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의 인생에도 시련이 있고 억울한 일, 나쁜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순간, 이제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과몰입'은 역으로 나를 공격해 온다. 내 일도 아닌 남(덕질대상)의 시련에 마치 내가 그 시련을 겪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내 아이돌'이 전혀 근거 없는 억울한 루머에 시달리며 꽤 오랜 기간 실시간 검색순위(당시엔 아직 네이버 메인에 실시간 검색순위가 있었다) 1위를 기록했던 적이 있었다. 팬의 한 명으로서 나는 내 아이돌이 너무 걱정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머글(팬이 아닌 일반인)들이 루머를 쉽게 믿어버리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 내 아이돌을 검색하면 나오는 연관검색어는 엉망이 되었었고, 나를 비롯한 팬들은 수시로 그 루머 관련 연관검색어를 없애기 위해 다른 검색어로 검색하는 '노동'을 했다. 그 루머에 시달렸던 몇 주간 나는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게 뭔지를 경험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억울한 일이었지만, 내 일상의 영위에 위협이 갈 정도로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또 다른 기억은 탈락에 관한 것이다. 내 아이돌(위에서의 내 아이돌과 다른 이임을 밝힌다ㅎ)이 소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다. 매주 몇 명씩 떨어지고 마지막에 남은 몇 명만이 데뷔라는 특전을 받는, 요즘은 너무 흔해서 새로울 것도 없는 그 포맷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내 아이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최종선발에서 떨어졌다. 나는 지금도 그 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날 생방으로 보고 다시는 보지 않았으니까. 내 아이돌이 떨어진 순간 나는 TV를 껐고, 족발에 소주를 시켰다. 그날은 술을 매우 많이 마시고 잔뜩 취해 잠들었고, 그 이후 며칠을 고통으로 보냈다. 웃기게도 체감상 내가 회사 면접을 보고 떨어졌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ㅎ 




  내가 한없이 소중히 여기게 된 내 덕질대상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나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에게 시련이 닥치면 그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이건 내 일도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더 무력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오직 응원뿐인데,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도 잘 알 수 없다. 이런 고통을 느끼지 않고 덕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답은 '적당히 덕질하는 것'이 되겠다. 너무 과하게 좋아하고 몰입해서 덕질대상과 나를 동일시하지 말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을 살고 나는 내 삶을 사는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자, 하는 마음으로 덕질하면 된다.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적당히 하는 덕질이 과연 행복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흐흐. 결국 덕질은 과몰입에서 즐거움을 얻는 과정이다. '내 가수/내 아이돌/내 배우'처럼 '나의 것'이라고 애착을 가져야 그 대상에게서 행복을 받을 수 있다. 애착을 가졌는데 어찌 즐거움만 얻을 수 있겠는가? 희로애락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상, 그의 고통과 슬픔까지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늘 내가 다짐하는 건, 그게 내 삶을 해칠 정도까지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상에 아주 약간, 약~간 영향이 갈 정도까지는 괜찮겠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두 사례처럼(ㅎㅎ) 격하게 힘들 정도까지는 가지 않으려 하며 그 정도까지 갔다면 차라리 탈덕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덕질은 결국 나 좋자고 하는 것이니까. 덕질에서 얻는 기쁨보다 고통이 더 많아지는 순간 그 덕질은 의미를 잃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수학계산처럼 +-에서 -가 더 많아졌네? 덕질 그만! 이렇게 쉽게 되지는 않는다. 사실 그마저 덕질의 재미일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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