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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Jul 06. 2023

서사와 캐릭터 관계성에 미쳐서 하는 덕질

나의 덕질 연대기 - 드라마 편


나의 덕질 연대기 - 드라마 편




서사에 미친 사람이 바로 나야 : 드라마에 빠지는 이유


  나의 경우, 푹 빠져 덕질했던 드라마들을 돌이켜 보면 모두 서사가 뛰어나고 캐릭터들 간 관계성이 매우 좋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이 절박하게 서로에게 의지하는 서사를 보여주는 훌륭한 연출, 연기가 눈에 들어오면 나는 단순한 시청자에서 덕후로 내 위치를 전환했다. 덕후가 되면 드라마를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드라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기 위해 SNS와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끌어모으고 관련 굿즈들을 사들인다. 드라마 관련 감독/작가/배우들의 인터뷰를 하나하나 찾아보고 되새김질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의 블루레이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지금부터는 내가 블루레이를 간절히 원했던 세 개의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진: UnsplashAjeet Mestry



1. 제발 dvd라도 만들어 줘요(엉엉) : 드라마 A


  처음 나를 드라마 덕질에 입문하게 했던 드라마는, KBS2에서 방영되었던 한 멜로드라마였다. 톱 배우가 나오긴 했지만 유명 작가의 작품은 아니었기에 대대적인 홍보 속에 시작된 드라마는 아니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1회를 보게 되었고,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에 빠져 이후 본방사수를 하며 챙겨봤다. 두 주인공이 각자의 인생에서 받은 상처를 서로를 통해 치유해 나가는 서사가 마음에 쏙 들었으며, 가을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연출이 가슴에 와닿았다. 꼬박꼬박 본방을 챙겨봤던 A 드라마는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끝내 내 첫 인생 드라마가 되었다. 


  슬픈 이야기는 드라마가 끝난 다음부터 시작된다. 너무너무 훌륭한 드라마를 보게 된 나는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블루레이/DVD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덕후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덕질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소유하고 싶다. 드라마 장면장면에 대한 감독+배우의 코멘터리도 듣고 싶었고, 메이킹이나 비하인드 영상도 보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블루레이/DVD가 발매되려면 일정 인원 이상의 선입금자가 모여야 했다. 

  나름 드라마 덕후가 좀 붙었었기에 블루레이/DVD 추진 카페가 개설되고 선입금창을 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나 또한 절실하게 당시 잘 안 쓰던 SNS에 홍보까지 해가며 블루레이 발매를 열망했지만, 끝내 선입금 최저선을 채우지 못해 결국 DVD조차 발매되지 않고 끝이 났다. 당시 감독님도 출연배우분들도 코멘터리 참여에 긍정적이어서, 발매가 불발되었을 때 너무너무너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두고두고 아쉽다.



2. 좋아하게 되면 반드시 블루레이를 꿈꾸게 된다 : 드라마 B


  두 번째로 내 마음에 들어온 드라마는 OCN에서 방영되었던 오컬트물이었다. 나는 호감을 가진 배우들이 주인공이라기에 궁금해서 1화를 봤다가 순식간에 드라마에 몰입했고 그렇게 덕후가 되었다. 무려 수목 11시라는 극악의 시간대에 편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지금은 없어진 드라마편성시간대), 환상적인 작감배(작가+감독+배우)의 콜라보로 드라마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주연 세 명이 서로 의지하며 악귀에 맞서 싸우는 서사가 그야말로 완벽했다. 대중적이기엔 너무 매니악한 소재와 수위(꽤 잔인했음)였기에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화제성과 덕후몰이는 꽤나 대단하게 했던 드라마였다. 매 화가 끝날 때마다 누가 악귀일까에 대해 드라마 갤(DC인사이드 갤러리로, 그 당시에는 드라마별 갤러리에 팬들이 모여 드라마 관련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에 토론 대회가 열릴 정도였다ㅎ


  마지막 회까지 화제 속에 방영되었던 B 드라마는 종영 후 순조롭게 블루레이가 추진되었고, 19금 드라마 최초 블루레이 발매 성공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내 생애 첫 드라마 블루레이였다. n0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걸맞게 본편+감독/배우 코멘터리+메이킹 등 다양한 콘텐츠가 담긴 CD가 무더기로(?) 들어 있었고, 대본집을 포함한 각종 엽서/포카 등 특전도 두둑이 받았다. 팬들의 주도 하에 블루레이가 추진된 만큼 각 특전이나 코멘터리에 나를 포함한 팬들의 의견이 들어간 점도 뿌듯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콘텐츠를 더욱 격하게 앓을 수 있는 추가 콘텐츠를 손에 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도착한 블루레이는 집에 있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재생시켜서 잘 시청했다(블루레이는 재생을 위해 별도의 ODD나 플스 등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3. 내 인생에 웹드라마는 없을 줄 알았는데 : 드라마 C


  사실 B 드라마 이후 더 이상 드라마 덕질은 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 시기 이후로 내가 드라마 자체를 거의 안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상콘텐츠 자체에 좀 심드렁해진 상태였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트렌드로 번진 소위 웹드라마(TV채널에 편성되지 않고 OTT 등에서만 방영되는 드라마를 통칭하는 걸로 추정됨.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1회당 10분~30분 사이의 숏폼~미드폼인 경우가 많음)에는 더더욱 관심이 1도 없었다. 


  하지만 몇 달 전 왠지 갑자기 드라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저런 OTT를 넘나들며 몇 개의 웹드라마를 별 감흥 없이 보던 나는 결국 그 드라마를 만나고야 말았다. 순식간에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몰아본 나는(다 합쳐도 3시간이 안 되는 짧은 드라마였음) 당연하다는 듯이 SNS에 접속해 드라마와 출연 배우에 대한 검색을 시작하고(덕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저예산 웹드라마이기에 작가, 연출, 배우 모두 신인에 경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의 서사와 그 서사를 풀어내는 연출/연기가 모두 굉장했다. 거기에 레거시 미디어 드라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풋풋한 감성이 더해졌다.  

  드라마를 수십 번 돌려보고 비하인드 영상을 몰아보고 한 나는 지금 이 드라마의 블루레이를 예약하고 배송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후훗). 내가 드라마를 안 보던 몇 년 사이에 블루레이 제작에 대한 기준이 바뀐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작은 웹드라마인데도 블루레이가 나오더라(!). 몇 달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 후에 코멘터리와 비하인드 등등 추가 콘텐츠를 받을 생각에 벌써부터 너무 행복하다.   



그 계절이 되면 그 드라마가 생각이 나


  드라마 덕질의 가장 독특하면서도 좋은 점은, 드라마의 계절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흠뻑 빠져 좋아했던 드라마는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드라마 속 배경이 되는 계절이 올 때마다 어김없이 떠올라 감성에 젖게 한다. 나는 아직도 초가을 선선한 날씨에 좀 서정적인 기분이 들 때면 A 드라마가 생각나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쌀쌀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면 B 드라마를 기억한다. 그리고 앞으로 초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는 C 드라마를 두고두고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드라마를 덕질하는 것은 특정 사람을 덕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것이기에 다른 덕질과 그 결이 약간 다르다.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감독/작가/배우의 후속작도 응원하고 찾아보는 편이지만, 딱 그 작감배가 만나 그 시기에 만들어낸 드라마만큼 나를 미치게 만들지는 못했다. 결국 드라마를 덕질한다는 건 끊임없이 과거의 어떤 지점을 되새기며 추억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B 드라마와 C 드라마의 경우에는 작감배 그대로 시즌2가 나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긴 하다. 그러면 미래지향적 덕질이 될 수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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