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말의 교도소 풍경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연말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니 눈 깜짝할 새 바로 새해가 다가온다. 나는 무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동심이 되살아나 따뜻해지기도 하면서 뒤숭숭하기도 하다. 한 해를 되돌아본다. 주변인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가, 세웠던 목표는 달성했는가, 나 스스로 성장하는 한 해였는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는가... 아무래도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한 살을 먹는다는 아쉬움이 가장 극에 치달을 때가 바로 요즘과 같은 연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나이가 먹기 싫은가 보다.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지난날들이 너무 아깝다. 나는 오늘도 불 꺼진 야간사동을 순찰하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다.
"주임님 연말 잘 보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넉살 좋게 한 수용자가 인사를 한다. 징역이 한두 번이 아니라 교도관을 대하는 태도가 제법 여유가 있다.
"고맙습니다. XX씨도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엔 좋은 일 많길 바랍니다."
"저 내년에도 못 나가는데요. 하하"
"그건 몰랐네요..."
"아무튼, 주임님 오늘도 수고하세요!"
이 수용자는 징역 사는 방법을 터득한 만렙이다. 대표적으로 수용자들의 전략은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 교도관들의 코를 걸어서 질리도록 만들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게끔 만들거나, 교도관들과 사적인 친분을 만들어 징역생활을 편하게 만들거나 하는 것이다. 이 수용자는 첫 징역을 살 때는 정보공개청구를 수도 없이 하고, 이것저것 딴지를 걸어도 보고, 많이 묶여도 봤었다고 나름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징역으로 따지면 내가 주임님보다 훨씬 선배라면서 으스대기까지 했다. 이제는 이 수용자도 제풀에 지쳤는지 2번째 전략으로 가고 있는 듯했다. 이름하여 화전양면전술. 교도관들의 인간적인 면을 파고드는 것이다.
겉보기엔 이런 수용자들이 착하고 대하기 편한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내 경험상 지론이다. 이미 이 수용자들은 징역생활에 통달한 도사들이므로 이간질하거나 말을 옮기는 데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말실수를 하여 코가 걸리거나 척을 지게 된다면 어느 누구보다 피곤해지는 것이 이런 부류들이다.
하지만 교도관들도 사람이다. 비록 차가운 철창 안에서 근무할지라도 언제까지나 수용자들에게 차갑게 대할 수는 없다. 나도 사람이기에 이렇게 스스럼없이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수용자들에게는 살짝 정이가게 마련이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도 한다.(단, 목적이 있는 얌생이 수용자들에게는 예외다.) 아무튼 교도소의 연말이라 해서 사회의 연말과 딱히 다른 것은 없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연말인사를 주고받듯 이곳도 비슷하다.
수용자들도 계절을 타나보다. 여름에는 그렇게 극성맞고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던 수용자들이 겨울이 되면 조용해지니 말이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연말에는 말썽을 일으키는 수용자들이 현저하게 적다. 누구나 그렇듯 연말에는 지난날들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이기에 조금 더 차분하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너그러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차창 너머로는 도시의 네온사인들이 반짝거리며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외벽을 비추는 불빛들도 나름 운치가 있다. 나도 2024년을 되돌아본다. 과연 나는 내 삶에 간절했을까? 대부분 후회투성이인 일들이지만 딱 하나 잘한 것이 있다면 브런치를 시작한 것이다. 담장 안의 이야기를 재미있고 편하게 쓰고 싶어서 시작한 브런치스토리. 연재 처음에 다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약속된 연재가 밀리고 매너리즘도 왔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준 사람이 1명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새해에는 조금 더 꾸준하게 그리고 딱딱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글, 하지만 그 속에 뼈가 있는 글들을 써보고자 하는 것이 내 목표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보았으면 좋겠다.
이처럼 교도소의 연말도 여느 누군가 그러하듯 지나간 한 해를 반성하고 새로 다가올 한 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