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출근 길이 즐거운 직장인이 있을까? 적어도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어쩌면 잠자는 시간보다 더 많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 시간이 즐겁다면 개인에게도 직장에게도 크나큰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출근길이 즐겁지 않다. 출근하면 쌓여있는 부담스러운 업무들, 직장에서 마주치는 꼴 보기 싫은 사람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 틈에 치이는 출퇴근길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도 나도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 파이어(FIRE)족을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비슷하다. 교도관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무기력함에 빠진 여느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이런 게 바로 매너리즘이라는 것일까?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교도관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1. 목표가 없다
어느 공무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공무원 조직은 애초에 성격자체가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중심의 조직이 아니다. 교도관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교도소나 구치소의 질서유지, 사고방지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공동의 목표가 모두 수동적인 예방행위, 방어행위에 치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언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조직원들이 즐겁고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힘든 것 같다. 물론 문제 수용자가 난동을 피울 때 교도관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그 수용자를 제압하기 위해 뭉치지만 그때뿐이다. 수용자 제압 자체가 목표가 되긴 힘들기 때문이다. 수용자의 교정교화나 국민에 대한 봉사와 같은 목표가 있긴 하지만 개개인에게 동기부여를 주기에는 너무나 추상적이다. 이러한 목표를 품에 안고 묵묵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난 그런 위인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교도관으로 근무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보람이 원동력이 된 적은 있어도 어느 목표를 위해 열정적으로 무언가 몰입해 본 경험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일 자체가 루틴 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반복이다. 혹자는 목표가 없는 만큼 치열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지 않으니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겐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2.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가 없다
뉴스기사를 보면 몇몇 사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성과급을 두둑이 받는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곤 한다. 열심히 일해서 회사가 잘되면 그것이 눈에 보이는 수치인 이익이 되고 그것은 바로 내 주머니를 채워주는 실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진다.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법칙은 파블로프의 개도 알고 있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무조건반사적인 이치와도 같다. 하지만 공무원조직은 실적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개개인의 노력에 대한 측정이 모호하고 보상체계가 연공서열, 흔히 말해 짬밥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못한다. 사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대충 일하고 월급만 받아가면 장땡이라는 인식이 점점 퍼지고 직장에서의 일 보다는 재테크와 같이 직장 밖에서의 개인적 목표에 힘쓰는 분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직장에서의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직장 밖에서 내가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보람이나 성취를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코인, 주식, 부동산투자로 재미를 보았다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 같다.
3. 마음을 터놓을 만한 동료가 없다
직장생활도 사회생활이다. 사회생활은 혼자 할 수 없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가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러한 직원 간의 상호작용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내편인 사람 하나 정도는 있으면 든든하다. 하지만 교도관은 사무실 근무가 아니면 단독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원들과 대화할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몇몇 직원분들은 이런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직원 간의 스트레스를 줄여주어 장점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직장생활도 사회생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동료 한 명쯤은 필요할 것 같다. 외로우면 직장생활이 힘들다.
4. 취미생활이 없다
직장 내에서 행복을 찾기 힘들다면 직장 외적으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것이 술이나 유흥 등의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안 되겠지만 바람직한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경우가 많다. 나는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취미생활을 하고 계신 멋진 분들을 많이 보았다. 마라톤을 열심히 해서 선수급의 기록을 달성한 직원, 등산을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의 대부분 산의 정상을 등반한 직원, 자전거를 열심히 타서 국토 종주를 한 직원 등 직장 밖에서 성취를 이뤄내는 직원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하지만 별다른 취미가 없는 분들은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여 직장에서의 삶도 활력이 없어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렇게 대충 생각나는 대로 교도관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이유를 4가지 정도 생각해 보았다. 일반 직장인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도 있지만 교도관이라는 특수한 직업이기에 더욱 공감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유들이 직업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것을 안다. 그냥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면 무뎌질 것이라고 덤덤히 생각하련다. 솔직히 구조적인 문제들을 탓하기 이전에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나의 탓이 가장 크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이전에 내 삶에 대해 간절함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도 해본다.
누군가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너무 나약하고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문득 매너리즘이라는 녀석이 찾아와서 무기력해도 보고 자기 인생에 대해서 돌아볼 기회도 가지면서 아파봤을 때 비로소 내 인생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내가 가진 직장이 소중함도 느끼며 내가 맡은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열심히 해야지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왜 열심히 해야 하고 무슨 보상이 따르며 그것이 나를 얼마나 더 성장시킬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갈수록 떨어지는 공무원 응시생 숫자와 갈수록 높아지는 공무원 퇴사자 숫자가 이를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