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호수 Mar 29. 2024

교도관의 무기

"각방 차렷! 2동 상층 65명 점검준비 끝!"


나는 우렁찬 목소리로 사동이 떠나갈 듯이 점검을 한다. 목소리를 크게 내 본다곤 하지만 데시벨만 높을 뿐 그 목소리에서 풍기는 위압감이 부족다. 옆동 주임님이 점검을 할 때는 목소리만으로 포스가 느껴졌는데 그에 비하면 아무래도 내 목소리는 이곳에서 무기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교도관들은 기본적으로 각자 무기를 하나씩 갖추고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무기는 위급한 상황에 수용자를 제압할 수 있는 물리적 의미의 무기가 아니라  

수용자를 다룰 때 위력을 발하는 교도관 개개인의 특성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교도관 각자에게는 수용자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라는 무기가 기본적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교도관의 색깔에 따라서 이 무기가 예리한 칼날 같이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매우 무뎌지기도 한다. 

어떤 교도관은 자신에게 권한이라는 무기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혹은 그 무기를 사용하기를 귀찮아하고 편법을 사용한다.   

만약 그 무기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고 그저 지니기만 한다면 

수용자들은 그 무기를 무기로 보지 않는다. 

결국 그러한 교도관은 수용자에게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이다. 


수용자들 방에서 심심할 때면 이 주임님은 어떻고, 저 계장님은 어떻고 교도관의 일거수일투족을 이야기하며 평판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평판은 은근히 빨리 퍼진다. 교도소가 폐쇄적인 곳이라 소문이 느릴 것 같지만 단언컨대 이곳만큼 소문이 빠른 곳도 없을 것이다.  여러 수용자들이 모이는 운동시간을 통해서든 수용동 봉사원을 통해서든 다른 직원의 입을 통해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 담장 안의 일은 비밀이 없다.  


마치 중고등학생들이

"저 선생님한테는 찍히면 큰일 나"

"우리 담탱이 성격 X 같네"

"학생부장한테 맞기 싫으면 조심해"

라는 식으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평판을 공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처럼 수용자들 사이에서도 교도관의 평판은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소위 수용자를 잘 잡는 교도관이라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그 교도관은 일 하기가 매우 수월해진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교도관들의 무기는 단연코 기죽지 않는 '배짱'. 속된 말로 '깡',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발휘되는 '센스'이다. 조일 때와 풀어줄 때를 구분할 줄 알고 연애에서 밀당하듯이 자유자재로 수용자를 들었다 놨다 할 줄 안다. 이러한 교도관들은 FM은 아니지만 유연하고 대부분 눈치가 빠르며 대인관계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어떤 교도관의 무기는 지식이다. 이러한 유형의 교도관은 여러 가지 경력을 통해 얻은 해박한 실무적 지식들로 무장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현장에서만 경력을 보낸 교도관은 보안 외의 업무처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문을 구할 땐 결국 타 과에 전화를 하거나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히 생기게 된다. 하지만 지식으로 무장한 교도관은 상대적으로 이런 아쉬운 소리나 부탁을 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수용자를 대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일하기가 매우 수월하다. 특히 미결 수용자들 같은 경우에는 소송, 재판관련하여 난생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많고 매번 상담을 요청해 오는데 이러한 수용자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응하게 되면 수용자들 사이에서도 스마트한 교도관, 능력 있는 교도관으로 통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도관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어떤 교도관의 무기는 피지컬이다. 원시시대부터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DNA가 인간에게는 아직 남아있다. 이러한 유형의 교도관은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활용하여 수용자를 관리한다. 이러한 유형은 대부분 '저 교도관에게 덤볐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구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대부분 키가 크고 몸이 매우 좋거나 목소리가 크며 포스가 느껴진다. 도덕적인 세계에서는 인간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본능적인 세계에서 외모라는 것은 매우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어떤 교도관의 무기는 교활함이다. '이이제이'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말이다. 오랑캐를 수용자로 대입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러한 교도관들은 머리회전이 빠르다. 자신의 힘을 들이지 않고 수용자를 이용하여 수용자를 통제한다. 일반적으로 수용자가 생활하는 방 안에서도 위계질서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교도관이 제일 센 놈과 관계를 잘 형성해 놓으면 그 밑의 수용자들은 알아서 말을 잘 듣는다. 수용자들에게는 교도관의 한마디보다 그 센 놈의 한마디가 더 무게감 있게 느껴질 때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내 편인 수용자들을 심어놓아 문제 수용자의 크고 작은 규율위반 행위에 대하여 신고를 받아 목격자로 활용할 수도 있고, 문제가 있는 수용자들끼리 같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게 만들어 둘이 싸움이 발생하면 둘 다 일망타진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여우처럼 교활한 전략가 기질이 그들의 무기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교도관의 무기는 따뜻함이다. 죄를 짓고 들어온 수용자들 사이에서 휴머니즘 따위가 통할까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도관의 따뜻한 진심이 수용자를 변화시키는 경우도 분명 있다. 수용자들은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과 유년시절을 보낸 경우가 많다. 이런 수용자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인간적으로 대해주다 보면 극히 일부겠지만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뉘우치는 수용자들도 있다. 혹자는 수용자에게 이러한 친절함과 따뜻함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죄 값을 치르는 그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은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의견도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한 수용자의 영혼이라도 변화되어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그 또한 매우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이 또한 분명한 교도관의 역할이다.     


이처럼 교도관들은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교정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어떤 무기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없다. 

각자의 무기는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유연하게 무기를 적절히 바꿔가면서 사용해야 훨씬 효과적일 것이고, 

한 가지 무기로는 절대 수용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 


교도관으로서 나의 무기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물론 아직 무기라고 하기에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인격적으로, 업무적으로 점점 성장하면서 

나의 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예리해질 것이다.  

이전 05화 신참교도관 신고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