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이 되고 나서 처음 사동에 들어섰을 때
내가 느꼈던 긴장감과 부담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신참내기임에도 불구하고
야간에 사동 한 개 층을 맡아서 100명 이상의 수용자들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했다.
군대에서 고작 열명 이내의 소대원들을 통제해 본 경험이 전부일뿐,
수십 명 이상의 사람들, 그것도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에 수용된 이런 험악한 종류의 사람들을 다뤄본 경험은 더더욱 없는 나였다.
한 마디로 애송이. 속된 말로는 좆밥...ㅎㅎ
그게 바로 나였다.
선배들이 가르쳐 준 매뉴얼은 보고 또 보아서 완벽하게 숙지를 해 놓았다.
하지만 막상 그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곳에 수백 개의 눈들이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니 고독하고 무서웠다.
벌거벗은 채로 정글에서 맹수와 싸워야 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준비가 안된 상태로 무대를 올라간 사람처럼 덜덜 떨렸고,
그 어두운 분위기에 압도당해 쫄아버렸다.
물론 동료,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도와줄 것을 머릿속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운 바로 옆 사동에 내가 의지할 동료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혼자 이 수용자들을 감당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사동에 들어선 순간 험악한 인상을 가진 수용자들이 철창을 두 손에 잡고 사냥감을 기다리듯 나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나는 만만해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내 평소 성격보다 더 센 척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봐도 말투나 행동 하나하나가 과해 보이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수용자들은 눈치 백 단이다.
내가 신참인 것을 한눈에 알아챘다.
내 말 한마디, 내 행동거지를 한눈에 스캔하고 바로 계산을 해버린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웬만한 사람들보다 머리회전이 한 수 위라고 보면 된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머리가 나쁘고 눈치가 없으면 범죄도 못 저지른다. 정말이다.
아무튼 그들은 스캔을 끝내고,
나를 슬슬 시험해 보기 시작한다.
"부장님, 제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그런데 의료과에 전화해서 진통제 좀 받아와 주시면 안 될까요?"
쉽게 되지 않는 것인 줄 알면서도 신참을 골탕 먹일 생각에 곤란한 부탁을 하여 한번 떠보는 것이다.
종종 신규직원이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의료과에 찾아가서 정말 약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다.
뭐 안 돼도 상관없고, 되면 땡큐인 그런 상황이다.
수용자들의 말은 곧이곧대로 모두 믿으면 안 된다는 선배들의 말이 뇌리에 스쳤다.
'그래도 혹여나 이 수용자가 진짜로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의료과로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하던 찰나에 눈에 들어온 파란 명찰.
약쟁이다.
마약으로 들어온 수용자라는 뜻이다.
약쟁이들은 종종 약에 대해 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에 마약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강한 진통제를 모아뒀다가 대량으로 복용하곤 한다.
내가 만약 이 수용자에게 진통제를 받아줬더라면 그의 속임수에 보기 좋게 넘어가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수용자에게 말한다.
"야간에 응급상황이 아니면 약처방이나 진료는 안됩니다. 일과시간에 진료나 투약신청 절차를 거쳐서 받으세요"
"진짜 아파서 그러는 건데 가능하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제가 안된다고 얘기했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세요."
아픈 척, 공손 한척하는 그들의 혀에 속아 넘어갈 수도 있지만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모두 다 연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맘이 약해지면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말은 아담과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를 꼬드긴 뱀의 혀와 같아서 속아 넘어가기 쉽다.
항상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교도관은 하루에 수십 번도 이런 기싸움을 해야 한다.
사람을 다루는 것은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교도관들은 각자 가진 무기로 수용자들을 상대한다.
내가 가진 무기가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내가 가진 무기로 그들과 잘 싸울 수 있을까.
아직 내 무기는 형편없어 보인다.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렇게 나는 첫 야간근무를 긴장감과 걱정으로 지새웠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내가 그제야 교도관이 되었구나 실감했다.
누군가 야근은 교도관의 숙명이라고 했던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날 아침의 해가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평범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해가 특별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