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 하나로 수만 명의 청춘들이 속세를 등지고 젊음을 불태우는 곳.
젊음 하면 대개 싱그럽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테지만 이곳은 다른 의미로 역동적인 곳이다.
조용하지만 치열한 전쟁터 같다고나 할까.
그 전쟁이 너무도 치열하여 비장하고 우울한 빛마저 감도는 참 신기한 곳이다.
난 이곳을 '꿈꾸는 자들의 섬'이라고 부른다.
나의 노력은 점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때 나의 순조로운 페이스를 방해하는 불청객 하나가 등장했다.
그 녀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의 목을 점점 조여왔다.
공부가 너무 되지 않고 마음이 답답하여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어느 공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은 지대가 높아서 한강도 보이고 저 멀리 여의도까지 보였다.
수험생활로 정체되어 있는 나와 다르게
한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차들과 전철들은 분주히 제 갈길을 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은 나 하나쯤 없어도 잘 굴러가는구나'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도 저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도덕시간에 아노미현상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어떤 집단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
딱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지금 꿈꾸는 자들의 섬에서 방황하며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다.
섬이라서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 옆을 보니 이 공원에는 나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이 몇 보였다.
그들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나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한눈에 직감했다.
공부가 되지 않아 이것저것 잡생각을 정리하여 나온 듯 보였다.
나 혼자만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래. 누구나 흔들릴 수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건 없어. 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거야.'
생각해 보면 공무원이 되는 것은 최소 20대 1 이상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어려운 시험인데
내가 이 시험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험의 문턱이 낮기 때문에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합격할 수는 없는 시험.
'할 것도 없는데 공무원이나 준비해 볼까'라고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최소 1년 이상 죽어라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나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100명이 있는 대형 강의실에서 5명 이하만 붙어 이곳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시험이 결코 쉬운 시험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겸손해졌다.
나는 이 도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을 떠나서
이처럼 사람이 낮아지고 겸손해질 수 있는 시기가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마 이런 시기가 없었더라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의 피나는 노력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혹여나 실패했더라도 '수고했어. 괜찮아.'라고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이해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1년간의 수험생활이 내 인생에서 가져다준 것은 단순히 합격뿐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내적 성숙이었다.
그래서 '꿈꾸는 자들의 섬'에서의 추억은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