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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Mar 10. 2020

양갈비집에서 느낀 '여행 온 기분'

[안성맛집]북해도식 양고기 전문점 라무

어머니의 생일은 음력 1월12일이다. 설날 11일 뒤라는걸 알면서도 양력에 익숙하다는 핑계로 또 깜빡해버렸다. 생일날 밤, '뭐하냐'는 어머니의 카톡 메시지를 보며 '아차' 싶었다. 주말 일정을 비우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생일잔치는 '미리' 하는 거라고. 늦게 하면 의미가 없다고 핀잔을 들었다. '죄인' 입장에서 만회할만한 '카드'가 필요했다. 특별한 맛집이 필요했다.


한국에 양갈비가 대중화된건 의외로 얼마되지 않았다. 대학교 때는 못먹어본 것 같다. 양꼬치집에 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양꼬치를 먹었지, 비싼 양갈비를 선택하진 않았다.


달궈진 화로에 야채와 함께 굽는 '북해도식 양갈비'는 더 생소한 음식이다. 라무진, 징기스, 이치류 등 징기스칸 양갈비 체인점들이 늘어난 것도 수년내 일이다.


시골에 사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접할 일이 없었다. 안성에 징기스칸 양갈비집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색을 해봤는데, '라무'라는 식당이 나왔다. '라무'는 양(LAMB)의 일본식 발음이다. 블로그 글을 찾아보니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싶던 그 비주얼이었다.


코로나 탓에 손님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만석이었다. 미리 예약해둔 테이블에 안내를 받았다. 대학가에 있어서 그런지 손님들은 20~30대가 대부분이었다. 다찌를 두르며 배치된 테이블들, '시골사람' 눈에는 낯선, 이국적인 풍경이다.


생양갈비와 생등심, 특수부위(늑간살)로 구성된 3인모듬을 주문했다. 파와 양파, 마늘, 방울토마토 등 야채가 함께 나왔다. 서울에서 먹던 그 구성이다.


반찬은 소박하고 심플하지만 알차게 나왔다. 부모님은 몇 년 전 함께 했던 일본 여행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여행 온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맛'에 집중했다. 꽤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셋이 먹기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양이었다. 냉이향이 나는 된장찌개와 일본느낌이 물씬 나는 간장계란밥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생후추를 갈아 뿌린 숙주나물 구이도 별미였다.


중국식 양갈비와 일본식(몽골식?) 양갈비는 확연히 다르다. 같은 식재료이지만 맛과 분위기가 다르다. 향신료 맛이 강한 중국식보다 고기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는 일본식을 선호한다.


다행히 부모님의 취향과 일치했다. '누린내'를 걱정하던 어머니도 고기가 맛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미식가를 자처하는 아버지도 이 식당을 다녀온 뒤 '또 가자'는 말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여행은 식도락이다. 여행지에 가면 꼭 그곳에만 있는, 그곳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는다. 반대로 가까운 곳에서 먼곳의 음식을 먹으면 '여행 온 기분'이 든다. 쉽게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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