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한국 정치에서 참 많이 쓰이는 단어다. 사자성어도 아닌 3개 국어가 섞인 조어인데 하도 많이 써서 표준어가 돼버렸다.
기사에 요상한 단어를 계속 쓰기도 민망하지만 마땅한 대체제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또 이 단어를 쓴다. 내로남불. 21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현 정부, 청와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다.
집을 사는건 전국민의 '꿈'이 됐다. 집값을 잡겠다는 대책이 나오면서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고 집사기는 더 어려워졌다. 집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지난달 6.17 부동산 대책이 나온 후, 한 친구가 집을 사겠다고 하더니 얼마 전에 불쑥 계약을 해버렸다. 크게 무리했다. '영혼'까지 끌어 모았다고 한다. 2년전 임대아파트에 들어간다기에 그 돈이면 빚내서 집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언했지만 듣는둥마는둥 했던 친구다.
그 친구가 이번에 집을 산 동력은 '조바심'이다. 어떻게든 재산을 늘리고자 하는 청년들의 '아버지 세대', 즉 20~30년 전 30~40대 나이에 서울 아파트를 샀던 세대는 그 집만 유지했다면 현재 '부자'로 불릴만큼 부를 축적했다. 집값이 꾸준히, 크게 오른 덕이다.
청년들의 눈에 꿈을 이미 이룬 사람들이 보인다. 청와대 참모들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전·현직 청와대 참모 중 아파트·오피스텔 재산 증가 상위 10명의 평균 부동산 가격은 2017년 15억3000만원에서 2020년 27억4000만원으로 79% 증가했다. 현 청와대 참모진 중 다주택자가 1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집값상승 혜택을 이미 누리고 다주택은 더이상 안된다고 주장하는 '현(現) 다주택자'들의 말을 따를 사람은 없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6개월 전 비서관급 이상 청와대 참모진에게 실거주 목적 주택 1채를 빼고 모두 처분하라고 지시했다. 정작 자신은 서울 반포집과 청주집을 유지해왔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른 이유다.
이제는 맨손이다.
약속한 6개월이 흘렀다. 여론이 나빠지자 청주집을 팔았다. 반포집도 처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결국 그 집도 내놓겠다고 했다. 순식간에 맨손만 남게 생겼다.
늦었지만 필요한 결정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장, 그 무거운 자리에 따르는 책임이다. 이제 '내로남불'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
노 실장의 '뒤늦은' 솔선수범에 청와대 다주택자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각각의 사정이 있지만, '무조건' 처분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불똥은 정부 고위공무원들에게까지 튀었다. 노 실장이 강남집을 팔겠다고 한 8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다주택 보유 고위공직자들에게 잉여 주택을 빨리 매각하라고 권고했다.
맨손은 자유롭다. 손에 쥐고 있던 꽃병을 내려놓고 부동산 투기와 본격적으로 싸울 수 있다. 맨손, 21번의 대책보다 더 강력한 시그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