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객지 생활 15년, '내집'을 가진 적이 없었다. 기숙사, 고시원, 반지하, 하숙, 월세, 전세까지 웬만한 유형의 주거 형태는 다 겪어봤다. 그러면서도 내집을 사야겠다는 엄두는 내지 못했었다.
복층 오피스텔에서 고양이 두마리를 키우다보니 욕심이 났다.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지내고 싶었다. 며칠동안 인터넷으로 이사갈 집을 알아봤다. 우선 예산범위에 들어와야 하고,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광화문 15분거리, 여의도 20분 거리에 있는 매물을 발견했다. 30년된 낡디 낡은 아파트지만 나머지 두 조건(가격, 근접성)을 갖췄다.
무엇보다 전망이 마음에 들었다. 거실 큰 창으로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인다. 바로 앞엔 적당히 큰 공원이 있는데, 우거진 숲이다. 일본 만화 원령공주의 배경인 야쿠시마 지역이 연상되는 곳이다.
12층 아파트에서 11층, 가장 훌륭한 전망을 가진 집이다. 아랫층엔 시인이 산단다. 창밖을 보면서 잔잔한 재즈를 틀어놓고 차 한 잔 마시며 글을 끄적이는 상상을 했다. 계약을 결정하기까진 20분이면 충분했다.
세 달이 지나 9월, 잔금을 치렀다. 리모델링을 직접 하려고 휴가를 냈다.
인테리어 컨셉은 '자연'과 '따스함'으로 잡았다. 바깥에 보이는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 주인이 알뜰하게도 살았나보다. 30년 묵은 가구와 벽지, 장판을 들어냈다. 벽을 부숴 방을 트고 베란다를 확장해 거실을 넓혔다. 시야를 넓혀서 자연을 집안으로 불러들이려는 의도다.
천장과 벽 일부는 편백나무(히노끼)로 둘렀다. 숲에 있는 것보다 더 숲 향기가 났다. 백색등과 황색등을 같이 설치했다. 기분에 따라 다른 느낌을 내고 싶었다. 벽지는 심플하게 화이트로 골랐다. 바닥은 나무 패턴 강화마루로 정했다. 새로 산 가구들은 우드 아니면 화이트로 맞췄다.
한 주면 될까 했는데, 두 주가 걸렸다. 만족도는 높았다. 새집이 됐다. 타이밍이 좋았다. 마침 공용 시설도 수리할 때였다. 관리사무소는 외벽 페인팅을 새로 하고 바닥 타일을 다시 깔았다. 주차장에 아스팔트도 새로 덮었다.
천장까지 키가 닿는 진짜 나무도 들여놨다. 원래 있던 선인장들과 제법 잘 어울렸다. 핑크뮬리를 키워볼까- 하고 씨앗을 사왔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놓고 물을 주니 새싹이 솟아 올랐다. 기대감, 딱 여기까지였다.
강아지도 키웠다. 태어난지 두 달된 깐순이를 데려왔다. 매일 아침 저녁마다 같이 산책했다. 현관문만 열면 신났다. 집 앞 작은 숲을 특히 좋아했다.
하지만 청소기를 돌려도 또 나오는 털이 큰 문제였다. 세탁물에서도 베게에서도 깐순이 털이 나왔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어느 정도 배변훈련이 됐지만 냄새를 잡긴 무리였다. 히노끼 탈취효과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공기청정기를 들여놔도 큰 차이는 없었다.
여행을 가느라 사흘 정도 마당 있는 집에 깐순이를 맡겼다. 그곳엔 친구도 있었다. 여행 후 데려왔더니 표정이 달라졌다. 우울해보였다. 서로 힘들었나보다.
다음날 시골집에 데려갔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이 돌아왔다. 어떻게 꾸미든 진짜를 따라갈 순 없구나- 느꼈다. 시골처럼 서울살기, 아쉬움은 어쩔 수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