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처럼 서울살기
인왕산. 그렇게 높진 않지만 매력있는 산이다.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동선, 숲과 암석이 적당히 어우러진 풍치가 매력이다.
가장 큰 매력은 위치 아닐까. 인왕산은 서울 중심에 있다. 사대문을 감싸는 산 중 하나다. 볼 수 있고 오를 수 있어야 그 매력을 안다. 꿰어야 보배다. 인왕산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중에서도 한가운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다.
집 거실에서 멀리- 보이는 산이다. 아버지가 인왕산 암반을 보더니, 위에서 페인트 한통을 흘려 보내면 멋진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했던 곳. 직접 올라보고 싶었다. 스마트폰으로 등산로 입구를 찾는건 뭔가 야박해 보였다. 무작정 그 방향으로 걸었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채우려는 욕심이었다.
걷다보니 서대문13 마을버스 종점. 등산로 출입구가 나왔다. 조금 더 올라가니 계곡을 옆에 낀 등산로가 이어진다. 요즘 가물어서 물은 거의 말랐지만 도심에 이런 계곡이 있었다니. 인적도 드물다. 아껴서 숨겨둔 보물을 발견한듯 했다.
우거진 숲 사이 등산로는 적당히 가파르고 적당히 정돈돼 있었다. 조금 더 오르니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맑개 갠 하늘의 온도가 여느 때보다 더 청아하게 느껴진다. 폭염이 물러가고 밤 사이 비가 온 뒤라서 그런가보다. 솔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배꼽시계가 울려 정상까지 오르진 않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과 다른 방향 능선을 택했다.
개미마을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7~8년 전 쯤 스쿠터를 타고 한 번 갔던 곳 같은데- 우리동네 근처였던 것 같은데- 어딘지 정확히는 몰랐다.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산을 내려가 포장도로가 나오는 지점부터 마을이다. 시골 중에 시골이다. 요즘엔 진짜 시골도 안이렇다.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곧 허물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집들이 상당수다. 1950~60년대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들에선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빛이 바래 있었다. 벽화그리기 봉사를 왔었나보다- 그나마 안온지 꽤 됐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예산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마을 끝과 중간 쯤에 공중화장실이 두 곳 있다. 인왕산 등산객이나 벽화 사진 찍으러 온 관광객을 위한 곳인줄 알았다. 아니었다. 거주민들을 위한 곳이었다.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가구가 상당수라고 한다.
이상하게 좋은 것만 보였다. 광화문 회사까지 6km, 여의도 국회까지 11km. 이런 곳에 시골이라니.
담벽엔 호박넝쿨이 걸렸다. 텃밭엔 이름모를 식물들이 대열을 이뤘다. 마을 가운데로 냇물이 흘렀다. 밤엔 별도 잘 보인다고 한다.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저렴한 곳이란다. 50평 정도 대지 매매가가 2억원이 채 안된다. 서울에서도 마당 있는 집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마을 입구와 끝자락에 하나씩, 깔끔하게 지은 집들이 눈에 띈다. 허름한 집들 사이에 돋보인다. 아담한 마당까지 갖췄다. 좁지만 3층까지 올린 협소주택이다. 1층엔 갤러리 겸 카페를 만들고, 2층은 큰 거실, 3층엔 침실로 꾸며야지- 옥상에선 바베큐 파티도 할 수 있겠구나-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