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었다. 몇 년동안 유학을 가는 것도 아니고, 돌아올 기약없는 이민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지난 한 달 간 '송별회' 명목으로 수십명을 만났다. 3개월짜리 단기 연수, 4월말이면 돌아올건데도 가기 전에 꼭 봐야 한다며 시간을 내준 '내 사람'들이 많았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시국',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 2년이다. 만날 수 있는 사람 수가 제한되고 '통금'이 생기면서 수많은 모임이 취소됐다. 자주 만나던 모임의 숫자도, 빈도도 줄어들었다. 간절함이 없었다. 나도 가끔 코로나를 핑계로 약속을 미루기도 했다. 오히려 더 편하다고 느낀 적도 있다.
'떠나는 날'을 정해두니 마음이 달라졌다. 출국날까지 남은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1월초 인도네시아 비자를 신청하고 자카르타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짧다면 짧은 연수기간이지만, '번개'가 불가능한 거리로 '분리'된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쉴틈이 없었다. 연수간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만나자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며 아쉬워하는 분들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약속을 꾹꾹 눌러담아 1월 일정표의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출국 전날은 부모님댁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날따라 내곁을 떠나지 않은 깐순이가 벌써 아련하다. 강아지는 이틀만에 '평생갈 사랑'에 빠진다는데,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
출국날 공항까지 배웅해주겠다며 굳이 전날 시간을 내 먼곳까지 찾아와준 친구들, 명절처럼 모여준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막 인사는 유난히 길었다.
모든 만남의 '질'이 높아졌다. 한정된 시간을 아쉬워하며 깊은 대화를 나웠다. 만나는 사람들과 서로 정을 표현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코로나만 아니면 휴가내고 외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을 매일 느꼈다.
이제 그리움을 느낄 시간이다. 일주일 간 격리를 시작으로 3달 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산다. 그동안 내 삶을 더 행복하고 더 가치있게 만든건 바로 '내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