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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Feb 14. 2022

"Life is Journey" 그랩 오토바이 즉흥여행

인도네시아 뿐짝 여행기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여행을 마치고, 보고르 동쪽의 '정글도시' 뿐짝으로 향했따. 세계 3대 규모 동물원이라는 따만사파리와 가까운 괜찮은 숙소에서 '스테이케이션'으로 주말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쁘소나(Pesona)라는 4성급 호텔로 2박을 예약했다.


산속에 있는 숙소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인도네시아에 온 이후 가장 좋은 숙소다. 소박한 뿐짝의 집들이 한참 밑에 내려다 보인다. 자연 그대로 높게 솟은 산들이 배경으로 깔려 있는 아름다운 풍경. 뿐짝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고지대 전망이다. 우거진 숲을 내려다볼 수 있고 바로 옆에는 소나무숲이 있다. 여행에서 찾는 '장면'이 있다면 오늘 본 이 장면이다. 또 한 번 행복함을 느낀다.


방도 깔끔하고 식당, 피트니스 등 시설도 좋았다. 대부분이 가족단위 손님. 또 나만 혼자, 나만 외국인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발리에 가기 전까진 외국인을 보기 어려웠다.)


오토바이나 자동차 운전기사를 연결해주는 애플리케이션 '그랩'으로 오토바이를 불렀다. 3km 정도 거리의 요금이 4000루피아 밖에 안된다고? 한국돈으로 300원 벌자고 10분 걸리는 곳에 있는 오토바이가 콜을 잡는다. 하지만, 로컬 여행사가 있어야 할 목적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순간부터는 '프라이빗 투어'가 시작됐다. 오토바이 기사에게 구글맵을 보니 주변에 큰 쭈룩(Curug, 폭포)이 있길래, 거기로 가달라고 했다. 따만사파리 동물원 옆길로 빠져서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올라갔는데, 뿐짝이 다 내려다보이는 고지대까지 이르러서야 입구가 있었다.


그런데... 티켓을 파는 매표소에 사람이 없다. 스산하게 들개만 있다. 폭포로 향하는 길의 문은 닫혀 있고 자물쇠가 걸려 있다. '이걸 어쩌지'. 그때 눈에 들어오는 문구 "LIFE IS JOURNEY". 변수를 만나고 해결하는 것. 이게 인생, 이게 여행이지.


아 잊고 있었다,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그렇게 틈만 나면 저가항공권을 찾고 그에 맞춰 휴가를 내고 외국으로 향하던 취미가 사라져버렸다. 안가다보니 간절함도 사라졌다. 이번 연수도 차라리 취소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을까.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면 어쩌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오만가지 걱정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인도네시아 생활 15일째,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즐겁고 행복하다. 혼자이지만 전혀 외롭지 않다. 감탄사의 연속이다. 아, 이거지. 아, 이 장면이지. 아, 이 느낌이었어.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번씩이다. 역시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은 인생이다. 여행은 삶의 색을 더 진하게 한다.


'Life is Journey' 문구와 굳게 잠긴 자물쇠를 함께 맞닥뜨린 나와 기사님, 이제는 친구가 됐다. 폭포를 보고 싶으니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서로의 언어가 서툴지만 의사전달은 가능했다. 가는 길에 따만사파리에 들러 다음날 투어버스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물었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내몸을 완전히 맡겼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서 그 자체를 즐겼다. 이게 여행이다. 골목길로 들어가고 바위만 깔린 비포장도로로 진입해도 마냥 신난다. 어떤 곳으로 이사람이 나를 데려갈지 기대감만 높아진다.

큰길로 나와 한참 달리다보니 쁘소나 호텔과 고민했던 그랜드힐 호텔이 나온다. 언덕 위에 있다. 선택지 중에 있던 호텔인데, 지금 투숙중인 호텔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전혀 아쉽지 않다. 산으로 갈까 폭포로 갈까 옵션을 묻는 친구에게 쭈룩!을 외쳤다. 오께이~ 라고 한 이 친구는 유턴하더니 골목길로 들어간다.


마을을 지나치는데 가평과 비슷한 시원한 계곡이 나오기 시작한다. 기대감이 더 커진다. 그러면서 이 친구가 하는말. "가긴 가는데, 지금 닫았을지도 몰라". 내가 안심시켰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재밌어".

56만키로 이상 주행거리가 찍혀있는 오토바이에 80키로 거구를 태운 이 남자는 산길을 거침없이 달린다. 냇물을 대수롭지 않게 지난다. 한달전에 결혼한 새신랑인데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300원 벌자고 10분걸리는 곳에 왔구나.


한참을 달려 도착한 끔바르 폭포(Curug Kembar).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남자가 말하길, 이제는 걸어서 올라가야한단다. 입장료는 15000루피아.(1100원쯤).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기사 친구에게 가이드를 해달라고 했다. 2인분 요금을 내고 산으로 올랐다. 입구에서 캠핑하는 가족들도 만났다.


오토바이 친구에게 산을 잘타냐고 물었는데 잘 못탄다고 한다. 신발은 쪼리를 신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보다 한참 앞장서 간다. 


몇 년 전 친구들과 갔던 괌여행 때 했던 '해싱'이 떠오른다. 그때도 마냥 생각없이 돌아다니다가 '해싱'이란 걸 하려고 모여있는 미군 무리들과 합류했다. 쪼리신고 야산을 5시간 동안 탐험했었는데, 야산을 헤짚고 다니는걸 해싱, hashing이라고 하더라. 한국에선 단어조차 생소한 액티비티다.


오토바이 친구와 나는 둘이서 야산을 올라탔다. 시원한 물소리, 평온한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면서. 우거진 밀림을 만끽했다.


2시간반을 함께하고 호텔에 내려다준 친구에게 30만루피아를 건넸다. 한국돈 2만5000원 정도. 시급 1만원 정도 계산해서 준건데, 너무 많다며 어쩔줄 몰라한다. 나는 너무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다. 친구가 좋은 추억으로 이날을 기억하면 좋겠다.


이곳은 물가가 희안하다. 싼건 엄청 사고 비싼건 한국보다 비싸다. 가치를 어떻게 매기느냐의 차인데, 노동의 가치가 현저히 낮다. 최저시급이 1500원 수준이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게 가격이라지만, 성실하게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나는 친구덕에 만족스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 친구는 내게 시급 1만원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줬다. 인생이란 여행중에 만난 동반자가 너무 훌륭했다. 


나의 여행, 내 인생의 여정을 함께 걷고 있는 내 사람들이 떠오른다. 언제든 시간을 내주고 도움을 주고받는 친구, 가족, 동료. 인생이란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하는건 함께 여행하는 동반자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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