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알게 된 현지인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아니, 초대를 유도했다. 한국에선 모르는 사람에게 웬만하면 말을 걸지 않는 편인데, 외국에선 다르다. 길거리에서 눈만 마주쳐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온 이후로 호텔이나 식당에서만 밥을 먹다가 문득, 현지사람들이 사는 가정집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하자, 흔쾌히 OK를 외쳐주는 친구.
친구가 마침 독한 냄새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순다 전통음식 '젱꼴'을 경험시켜주겠다고 한다. 젱꼴이 뭔지 한 번 찾아봤다. 악명이 높았다. 냄새가 고약해서 외국인들은 감히 도전하기도 쉽지 않다고. 삭힌홍어는 못먹지만 마늘이나 겨자는 좋아하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경험해보겠나. 이 생각에 도전을 선언했다.
아침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친구가 알려준 주소에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인도네시아의 모습이 펼쳐진다. 여지껏 수도 자카르타, 근교 보고르에서도 중심부에서만 있었으니 다를 법도 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보고르 중심지에서 5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인데도 현대식 건물은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차에서 내리면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야 한다. 좁은 길 양쪽으로 가판대가 늘어섰다. 채소, 과일, 생선, 고기, 닭발 등을 파는 곳들이다. 위생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북적스러운 길을 50미터 정도 들어가니 친구의 집이 나온다.
환대해주는 가족들, 특히 친구의 할머니가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집 식구들이 함께 나를 위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진수성찬이 나왔다.
젱꼴과의 첫만남이다. 감자 같이 생긴 식물인데, 실제로 먹어보니 마늘과 감자의 중간 정도 느낌이다. 걱정했던만큼 지독하지 않다. 먹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후폭풍이 좀 오래 간다. 냄새도, 여운도 많이 남는 음식이다.
약간 짜다. 누군가 '밥도둑'이라고 했는데, 밥과 잘 어울린다. 풀 종류인 깐꿍도 간이 적당해서 맛있다. 아얌(치킨)과 가지볶음 요리까지, 전부 다 맛있었다. 할머니는 순다 음식을 잘먹는 내가 신기했나보다.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하시는데,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공들여 시간을 내서 만든, 처음 만나는 나를 위해 차려준 음식의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맛있기까지 했다. 보너스다.
한시간 정도의 짧은 방문을 끝내고 집을 나서려는데, 할머니가 너무 진심으로 아쉬워하신다. 내손을 잡고 와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하신다. 아쉬움의 눈물까지 주르륵...
네팔에서 느꼈던 감동의 재연이다. 2012년 해외봉사로 처음 네팔을 갔을 때, 한 아이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집에서 받았던 환대가 떠올랐다. 언제 봤다고 집에 있는걸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던 그 마음. 가진게 없어도 나누고 베풀려던 그 마음.
소유와 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했었다.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히 '잘사는게' 아닌데. 우리는 돈많은 사람을 '잘사는 사람' 이라고 지칭한다. 과연 부자가 '잘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행복한 사람이 '잘사는' 사람일까? 부자는 행복한가?
네팔에서 이런 고민을 하며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지, 단순히 '돈'만 쫓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바로 그 해, 돈많이 버는 일 대신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다.
살아 가다보니 이런 생각은 점차 무뎌졌다. 해가 지날수록 대기업에 간 친구들과 연봉 차가 커지는걸 보면서 '돈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은걸 후회할 때도 있었다.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생각에 동조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돈은 많을수록 좋다" 정도로 타협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 정확히 10년만에,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오늘 만난 가족이 앞만 보고 걷던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다시 마음을 잡자. 어떻게 사는게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인지 고민해보자. 인도네시아 13일째, 여행의 가치를 또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