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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Dec 16. 2022

나의 장례식은 이랬으면 좋겠다

유암종 진단을 받았다

#암..?


서른여섯살. 태어나 처음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당연히 별거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용종을 떼어내고 조직검사를 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받는 날에도 큰 두려움은 없었다.


진료실에서 사진을 봤는데 파묻혀있는 혹이 하나 있었다. 떼어낸 용종은 돌출돼 있어서 내시경 검사 중 제거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속에 박혀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한다.


유암종. 암과 종양의 경계선에 있는 경계성종양. 암으로 보는 곳도 있고 아니라고 하기도 하고 '애매한' 종양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인데 진단서에 써있는 'tumor'라는 단어, grade 1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게 무서웠다.


의사선생님은 '전이만 되지 않았으면' 큰 문제는 아닐꺼라며 상급병원 진료의뢰서를 써줬다. 가능한대로 다음달 대학병원 진료예약을 잡고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멍하고 우울감이 밀려왔다. 남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암'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하루이틀 정도 현실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파노라마


암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내 몸속에 자라난 이 작은 덩어리가 내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당장 인생을 정리한다해도 받아들일만한 인생을 살아왔을까.


물론 과한 망상이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뒤를 돌아봤다. 나의 죽음, 지난 삶을 생각해볼 기회로 삼아보자고.


아둥바둥 살아왔던 학창시절은 잘 버텼으니 만족한다. 대학때는 학교공부는 거의 손을 놓았지만 인생의 한축이었던 사진을 배웠고 기자가 될 기초를 닦았다. 카투사 전투병으로 지낸 군대생활도 즐거웠다. 무엇보다 신나게 놀았고 졸업 후에도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이 남았으니 됐다.


스물여섯살에 시작해 만 10년을 넘긴 기자생활. 본질적인 내성적 성향 탓에 마냥 쉽지만은 않았지만 조금만 적응하면 뭐든 최고가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을 밑천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힘빼고 균형유지하며 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내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하고싶은건 웬만한건 다 하고 살았다. 남들 눈치보지 않고 '내 인생'을 살았다. 100% 만족한 삶이었다고 할순없지만, 70~80점은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외로 죽음은 감당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고통의 시간이 길지 않았으면, 남은 시간은 보다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다.


본인은 쉽다. 당사자는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을 사람들, 내 사람들이 떠오른다. 슬픔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나의 장례식


진단을 받은 날, 몇몇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인데, 다들 순식간에 유암종 박사가 돼 버렸다. 별거 아니라며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친구, 큰병이 될 수 있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경계하는 친구, 표현방식은 달라도 나를 위한 걱정이라는 건 같다. 고마운 '내 편'들이 있어 행복했다.


결국 이날 밤 5명이 모였다. 하필 친구 4명 모두 검은옷을 입고왔다. 나의 장례식이라며 술을 기울인다. 이 친구들이 내가 술을 먹지 않는걸 봐준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주 한방울 마시지 않고 3차까지 시간을 함께 했다.


우리는 나의 죽음을 가정하고, 내가 없으면 모임 자리가 어떨지를 상상하며 깔깔댔다. 사후세계는 존재할까, 내가 죽으면 내 영혼은 내 장례식장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까 같은 어이없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유쾌하게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내 장례식은 즐거운 파티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사라져도 추억은 남아 있다. 나는 떠났지만 내 얘기를 하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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