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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Oct 04. 2018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

달, 별, 꽃 그리고 글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운이 남았다. 대사에 담긴 운율이 뇌리에 박혔다.


"나는 이리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변요한 배우가 맡은 캐릭터 김희성은 약간씩만 다르게 이런 문장을 반복했다. 마음에 쏙 들었다. 무용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것들이라서다.


아름답고 무용하다. 무용하지만 아름답다. 아름다움 자체가 존재의 목적일수도.



<달>

가을 밤바다. 수평선 주변이 붉게 물드는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초란 노른자만큼이나 진한 달은 수평선에서 멀어질수록 작고 연해진다.

크기와 색은 왜 달라지는 걸까- 언제쯤 저곳에 가볼 수 있을까- 달나라 여행은 얼마나 들까- 저곳에서 살 수 있을까- 무용한 고민들.


<별>

까마득한 거리. 혹시 저 별에서도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을까. 밤하늘을 커다란 도화지 삼아 누군가 뿌려 놓은 점들. 그 사이로 내키는대로 선을 그어 그린 그림들. 언젠가는 가볼까- 라는 무용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용한 거리감.

누군가가 마음대로 꾸며놓은 이야기들. 그럼에도 약간은 으쓱하며 미소 정도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들. 그 정도의 소소함.

맑은 날, 달이 가늘게 뜬 날, 빛공해가 없는 까마득한 곳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우주 한가운데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꽃>

"오늘 나의 사인은 화사요"
아름답게 빛나 아름다운 향을 뿜고 스러지는 꽃. 언제고 시들어 사라질건 알지만 미리 이별을 생각하진 않는다. 순간의 꽃- 그 순간이 아름다울 뿐이다. 카메라를 들고 뭘 찍을지 고민하며 두리번두리번- 걷던 스무살의 나. 꽃은 매번 그 발걸음을 멈추는 정지신호였다. 


<봄>

추운 겨울을 지나 더운 여름을 앞두고 잠깐의 휴가- 새로움과 설렘이 떠오르는 계절. 겨울의 강추위를 겪어봤기에 봄의 따스함을 만끽한다. 여름의 무더위를 견뎌냈기에 가을바람의 선선함을 즐길 수 있다.


<웃음, 농담>

삶의 목표는 행복 그 자체 아닐까. 뭔가를 이루려는 것도 그에 따른 행복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웃음은 행복의 상징이다. 농담은 그 웃음을 끌어낸다.



어릴 적엔 세상을 흔들 수 있는 의미있는 사람이 되겠다, 되야 한다- 고 생각했다. 의리의리한 직업을 가지겠다고, 막연히 세계 최고 CEO가 돼 뭔가를 바꾸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고,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거창한 꿈이 아닌,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이 정도의 행복이면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가가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사진기자를 준비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펜기자가 됐다. '의리의리한' 생각들이, 어릴 적 욕심들이 다시 생겨났다. 겪어보니 또 생각과 달랐다.


글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 그리고 무용하다. 하지만 아름답다.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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