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재벌곰탕'
가을 새벽. 비행기는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하늘을 가르며 제주로 향했다. 창밖으로 희미한 새벽빛이 번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여행이 시작됐다는 실감이 났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차를 빌리고, 곧장 향한 곳은 ‘재벌식당’.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주변은 적막했고, 상가 건물 1층에 걸린 작은 간판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와 함께 묵직한 곰탕 냄새가 밀려왔다.
입구에서부터 주인 할머니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짙은 제주 사투리로 “나는 원숭이띠여~” 하며 웃으시는데, 그 한마디에 낯선 여행자가 아니라 오래된 단골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두 번째 방문이긴 한데, 나를 기억하는것 같진 않았다.
곰탕 한그릇이 놓이자마자 뜨끈한 김이 피어오른다. 녹진한 국물 속에는 두툼한 고기가 가득하다. 국물은 깊고 진하다.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피곤했던 새벽 비행의 모든 피로가 녹아내렸다. 곰탕 한 그릇에 1만5000원. 양은 푸짐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부족하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하신다. 한 그릇만으로도 배는 불렀지만, 과식을 하게 됐다. 할머니는 다시 거의 한 그릇만큼의 리필을 내오신다.
“더 먹엉. 멀리서 왔주게.” 이 말엔 돈으로 살 수 없는 제주의 인심이 스며 있었다.
깍두기는 아삭했고, 약간 묵은 배추김치는 고기와 국물 사이에서 입맛을 깔끔하게 잡아줬다.
아침 8시부터 제주의 공기와 사람의 온기를 채운다. 산뜻한 여행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