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돌이와 깐순이

by peacegraphy

깐돌이는 특별했다. 뒷산을 휘젓고 다녔다. 엄청난 활동력이었다. 우리는 그를 산신령이라 불렀다.

야성적이었다. 함께 키우던 고양이를 못잡아 안달이었다. 톰과제리처럼 술래잡기를 반복했다. 결국엔 친해졌다. 아이스크림을 주면 고양이와 사이좋게 핥아먹었다. 마당에 풀어놓은 닭들과도 친하게 지내다 어느날 야성이 돌아왔는지 다 물어죽여 크게 혼난 일도 있다.


혼나서 삐지거나 발정기가 찾아오면 2~3일씩 가출도 감행했다. 삐졌을 땐 개답지 않게 고기간식도 마다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도 가족이 온건지 단번에 알아챘다. 오랜만에 시골집에 가도 누구보다 먼저 나와 반겼다.


동물이 아니라 동생 같았다. 조카에게도 깐돌이를 하대하지 말고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자갈밭에서 스톤테라피를 즐기며 자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활동적이다 보니 다치는 일도 잦았다. 야생 너구리와 사투를 벌이다 피부병이 옮기도 했다. 그래도 건강했다. 며칠 지나면 건강을 회복했다.


2015년 봄, 심장에 사상충이 생겼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자연 치유'를 고집하던 아버지의 마음도 움직였다. 동물병원에 입원시켰다. 9살, 개로선 적지않은 나이에 회복이 더뎠다. 퇴원 후 나아지는가 싶었다. 아니었다. 몸이 느려졌다. 한발자국 내딛는걸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한발자국 가까워지려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해 여름, 날이 좋은 날, 노을이 드리워지는 저녁, 어머니로부터 비보를 전해 들었다. 그날 따라 부채살 모양으로 지상을 비추는 샛노란 노을이 그를 추모하는듯 했다. 마당에서 가장 잘보이는 나무 밑에 그를 묻었다. 아버지도 가끔 아무 말없이 그 나무를 쳐다봤다. 그 적적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해 원룸에서 아파트로 집을 옮겼다. 서울에서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현실화할 기회가 생겼다. 틈만 나면 분양사이트에 접속했다. 올해 2월 깐돌이를 꼭 닮은 웰시코기 아이 분양글이 올라왔다. 고민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게 깐순이를 처음 만났다.

이전 18화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10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