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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Mar 02. 2019

[하노이 일기]트럼프 기자회견 선착순 100명

특별대우와 방치 사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28일 하노이의 아침. 회담이 막 시작된 오전 9시7분(현지시간) 프레스센터에 공지가 나왔다. 회담 후 열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에 참석할 비백악관 출입기자를 접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선착순, 1사1인으로 한정됐다.


부랴부랴 서류를 접수했다. 운좋게 백악관 프레스 풀을 한 장 받아냈다. 주최 측은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장인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까지 기자들을 태울 버스를 마련했다. 급하게 마련했는지, '하노이 시티투어 버스'였다.


버스에 올라탔다. 베트남 현지 경찰차가 기자들을 태운 하노이 시티투어 버스를 안내했다. 하노이는 평소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얽혀 교통혼잡이 심각하다. 일부 도로가 통제되기까지 했으니 특별대우를 받은 셈이다.


밝은 표정의 시민들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마침 옆자리에 베트남 방송사 기자가 앉았다. 그는 "하노이 시민들에게도 이런 이벤트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정상회담을 축제로 즐기는 이유를 깨달았다.


버스에선 세계 각지의 언어가 들렸다. 가까이 중국, 일본, 멀리는 스페인, 폴란드까지 전세계의 기자들이 한 버스를 타고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30여분 후 버스가 도착한 곳은 기자회견장이 아니었다. 버스는 JW메리어트호텔 인근 도로에서 멈춰섰다. 여기서부턴 특별대우가 사라졌다. 30분 가량 덥고 습한 공기에 그대로 노출된 채 방치됐다.


그러더니 인근 호텔로 이동했다. 기자들은 모든 소지품을 호텔 입구쪽 아스팔트 바닥에 내려놓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별모양의 미국 백악관 경호보안국 뱃지를 단 직원들이 기자들을 검사했다. 한 명 한 명씩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대로 회의실에서 30분 정도 대기했다. 그러던 중 서명식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후 4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 시간 변경 소식이 전해진건 낮 12시55분이었다. 백악관발 속보였다. 오후 4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이 한 시간 여 앞으로 당겨진 것. 불안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스페인 출신 한 기자는 "북미 관계는 항상 예측불가(unpredictable)"라며 혀를 찼다.


잠시 후 미국 측 직원이 대기시간이 끝났다며 기자들에게 버스에 타라고 말했다. 오후 1시12분 JW메리어트호텔에 도착했다. 보안 검색을 이미 마친터라 출입허가증만 확인 후 곧바로 기자회견장으로 안내받았다.


회담장엔 기자들이 앉을 좌석 208개가 준비돼 있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외신기자들이 격리됐다. 연단 기준 오른편은 미국 기자, 왼편은 베트남 현지 기자와 외신기자(한국기자 포함)를 위한 자리였다. 카메라 기자들을 위한 자리는 그 뒤에 마련됐다. 카메라 기자 사이에선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백악관 언론 관계자는 분주히 움직였다. 빈틈없이 자리를 채워달라고 요청했다. 초청받은 기자들은 오후 1시40분쯤 모든 좌석을 채웠다.


오후 2시15분,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함께였다. 북한과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는 협상 결과를 차분히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라도 회담장을 나갈 수 있어야 한다"며 "합의문에 서명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고 했다.


발표시간은 길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과 각각 약 2분씩 시간을 나눠 썼다. 오후 2시19분. 곧바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그는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이름을 꿰고 있었다. 직접 이름을 부르며 발언권을 줬다. 기자 수십명이 동시에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으려 했다. 이름을 모르는 외신기자를 질문자로 지목할땐 옷 색이나 위치 등으로 인물을 특정했다.


답변 내내 차분했다.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유의 유머도 나오지 않았다. 농담없이 진지하게 협상 결과를 설명했다. 추가 설명이 필요할 땐 폼페이오 장관에게 답변을 맡기기도 했다.


기자회견은 오후 2시53분 종료됐다.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고 예고한 뒤 추가 질문은 받지 않았다. 기자들을 향해 엄지손을 치켜들었다. 오른손을 흔들며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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