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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Apr 19. 2017

영화 파운더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 제국 완성기

굿모닝입니다. 여러분.
다들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4월은 정말 좋은 영화의 풍년이네요. 덕분에 포스트 쓸 거리를 걱정할 필요없어서 좋습니다. 실화와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 홍수처럼 나오고 있어서 어느 것을 먼저 써야할지가 고민되는 상황입니다. 나름 영화매니아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1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글을 쓰다보면 제가 갈 길이 얼마나 먼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네요. 그런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포스팅 역시 '화이팅'하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4월 20일 개봉 예정인 영화 <파운더>입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시리즈와 <버드맨>으로 유명한 마이클 키튼이 주연한 영화인데요.(감독은 <블라인드 사이드>로 유명한 존 리 행콕입니다.) 세계 최고의 프랜차이즈 업체인 '맥도날드'의 탄생과 성공에 대한 비화를 그린 작품이랍니다. 북미에서는 2016년 8월 5일에 개봉하여 높은 수익과 평가를 거둔 작품입니다. 올해 1월까지 북미 박스오피스 10위권 순위를 지켰다고 하니 스테디셀러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하겠죠.

이번 시간에는 영화 <파운더>의 배경이 된 맥도날트 탄생기의 실화와 <파운더>의 줄거리, 그리고 영화 관련 이야기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1. 영화 <파운더> 실화 : 동네 식당인 '맥도날드'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레이 크록의 이야기

레이 크록(Ray Kroc)은 미국 일리노이 출신으로 사업 재간이 뛰어나 어려서부터 총망받던 인재입니다. 공부보다 장사에 소질이 있던 크록은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영업사원, 피아노 알바 등을 전전하며 돈버는 재미를 일찍 배웁니다. 

레이 크록(좌)과 월트 디즈니(우)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크록은 미군에 입대를 지원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나이를 속여서 결국 입대에 성공합니다. 크록이 입대후 배치된 복무는 구급차 운전병이었는데 그곳에서서 월트 디즈니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디즈니는 그리만 그리던 소년이었고 헤밍웨이는 전쟁에 나간지 얼마 안되어 부상을 입고 제대하여 깊이있는 교우관계를 갖지는 못하였습니다.)

이후 전쟁이 끝난 후 레이 크록은 전후라는 기회를 살려 사업에 도전하지만 여러 차례 실패하고 작은 주방용품 회사의 밀크믹서기 판매원으로 일하다 1954년에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던 맥도날드 형제를 만나게 됩니다. 

주문한지 5초도 지나지 않아 햄버거가 나오는 맥도날드 식당에 큰 영감을 받은 크록은 이들 형제와 동업을 하기로 결의한 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데 대규모 사업에 관심이 없던 맥도날드 형제는 270만 달러에 사업을 크록에게 넘기고 맙니다. 그 이후의 결과는 아시는대로. 2013년 맥도날드는 전세계 120개국 37,000개의 매장을 확보한 세계적 기업이 됩니다.

2. 영화 <파운더> 줄거리

1954년 실패한 사업가 레이 크록은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팔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영업사원입니다. 한 주에 2~3개 팔릴까말까한 믹서기를 팔던 중,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한 식당에서 무려 6대를 주문하는 일이 생깁니다.

호기심이 생긴 크록은 그 식당을 찾아가는데 그 이름이 바로 맥도날드. 이곳은 딕과 맥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는 패스트푸드 식당으로 적은 메뉴와 셀프 서비스 대신 낮은 가격과 높은 질의 음식을 제공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매장이었습니다.

주문하면 30초만에 음식이 나오는 빠른 속도와 좋은 입지에 자리잡은 식당은 엄청나게 긴 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맥도날드 형제의 사업 아이템에서 돈 냄새를 맡은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에게 프렌차이즈 사업을 제안하고 어렵게 동업하는 사이가 됩니다.

돈보다는 좋은 음식, 고객과의 가족같은 관계를 중시하는 맥도날드 형제와 철저한 공격적 확장으로 높은 수입을 벌어들이려는 레이는 자주 충돌합니다. 우선 성공시키고 나중에 설득하자는 생각의 레이는 맥도날드 형제와 협의없이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이에 맥도날드 형제는 레이와의 관계 유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과연 이들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요?

3. 영화 관련 이야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을 이만큼 여실히 느끼게 해준 영화가 있을까요? 물론 레이 크록의 노력이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메뉴, 매장 구조, 운영 방식, 디자인, 상표명까지 전부 창시하였던 설립자 맥도날드 형제의 노력에 비해서는 부족하다 할 수 밖에 없죠. 당시 100호점까지 확장된 맥도날드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고작 현금 270만 달러(1961년 기준. 맥도날드 형제가 로열티 금액으로 받던 금액의 15년치)에 판매한 맥도날드 형제를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가 구축한 메뉴와 시스템을 활용하여 전국적으로 지점을 늘리고 인재들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역할만 수행했을 뿐, 패스트푸드 방식의 창조자는 맥도날드 형제였거든요. 물론 당시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공격적 마케팅과 가맹점 관리, 저가 전략, 품질관리, 청결관리 등 그의 공로가 많기는 합니다. 능력과 성실함이 있었던 크록이었지만 천재적인 선구안과 재능을 가진 맥도날드 형제가 50세 이전에 100만 달러만 벌면 은퇴하겠다는 야망없는 사람이었다는 엄청난 운을 낚아챈 복이 더 컸다는 것은 부인하기는 어려울 거에요.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70만 달러의 현금을 받은 맥도날드 형제는 가족을 중시하는 경영방침을 고수하며 작은 레스토랑을 만들었지만 훗날 그 근처에 세워진 '맥도날드'에 의해 폐업하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레이 크록은 1984년 1월 14일 사망할 때까지 맥도날드에서 일하였고 생전에 맥도날드 1호점 첫 종업원이었던 프레드 터너에게 회장 겸 CEO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그가 죽기전에 했던 일은 회장이 아닌 매주 체인점을 무작위로 방문해 햄버거의 품질, 청결, 직원의 친절성을 체크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살려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둔 사나이, 레이 크록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파운더'는 4월 20일 개봉합니다. 오늘 포스트 보신 분들은 꼭 관람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1954년,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오던 그 운명의 날에 내 서류 가방에는 갓 서명한 맥도널드 형제와의 계약서가 들어있었다. 나는 비지니스라는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상처입은 노병이었다. 그럼에도 전장에 나가고 싶은 열망에는 변함이 없었다. 당시 내 나이는 52세였다. 당뇨병에 관절염 초기 증상도 있었다. 치열한 전투를 거치며 갑상선 대부분과 담낭도 잃어버렸다. 하지만 내 인생의 절정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 레이 크록의 자서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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