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 Sep 18. 2017

영화 대장 김창수

치하포 사건 실화와 독립운동가 김구에 대한 논란

안녕하세요? 소모임입니다.
다들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오는 10월 19일 개봉예정인 영화 <대장 김창수>와 이 영화가 다루는 실제 사건인 치하포 사건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김창수는 백범 김구의 젊었을 적 이름으로 치하포 사건은 그가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치하포 사건과 이 사건이 논란이 되는 이유, 그리고 영화 관련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치하포 사건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을미사변 이후인 1896년, 황해도 안악 치아포의 어느 주막에서 20세 청년인 김창수가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김구(김창수)는 치아포 주막에서 한복을 입고 단발을 한 남자를 보게 되었는데 말투를 보고 그가 일본인임을 직감하였습니다. 조선인 행세를 하며 칼을 차고 있는 일본인을 수상하게 본 김구는 그를 잡아 짐을 뒤져보았고 그가 쓰치다라는 일본인임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김구는 그를 죽이고 그가 지니고 있던 칼과 돈을 탈취한 후 돈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넘기고 황해도 해주부로 떠났습니다.

김구는 이후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인천감리서로 수감된 후 자신은 명성황후를 죽인 일본인에게 복수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재판부는 김구가 무고한 일본인을 죽였다는 판단 아래 김구에게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허나 김구의 사형집행은 보류되었는데 이는 고종이 김구가 명성황후에 대한 복수를 명분으로 살인한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형 집행을 보류시켰기 때문입니다. 이후 감옥에 투옥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김구는 함께 수감중이던 조덕근, 양봉구, 황순용, 강백석 등과 함께 탈옥을 하여 충청도까지 남하한 후 승려가 되어 숨어 지냅니다. 김구가 사형을 언도받은지 약 1년 6개월 후의 일입니다.

그 이후 1911년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 암살 모의 혐의로 체포된 후 석방된 김구는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부장이 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김구 주석의 삶을 살아갑니다.

2. 김구가 죽인 쓰치다는 일본 군인인가, 무고한 일반인인가

이 사건의 핵심은 '일본군에 의해 왕비가 시해되었다고하나 범행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닌 일본인을 죽인 것이 정당한 것인가', 또 '김구가 죽인 쓰치다가 과연 명성황후 시해와 직간접적인 상관이 있는 일본 군인인가, 아니면 무고한 일본 민간인인가'입니다. 

김구는 쓰치다를 죽이면서 그 명분으로 그가 조선인 행세를 한 일본 육군 중위라고 주장했는데 현재 김구가 기록한 백범일지 외의 어떤 사료에도 쓰치다가 일본 육군중위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심지어 김구가 인천감리서에서 수감된 채 진술한 조서에도 쓰치다가 군인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쓰치다에 대한 기록은 일본공사관 기록에 나오는데 단순히 일본의 무역상의 고용인이었다는 내용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고한 일본의 민간인인 쓰치다는 당시 왜 조선인으로 위장한 것에 대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간첩이 아니라면 왜 조선인 행세를 하였냐는 것인데 당시 조선은 단발령과 을미사변으로 인해 반일 감정이 상당히 팽배한 시절이라 조선에서 교역을 하던 쓰치다가 신변의 위기감을 느껴 위장했다는 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김구를 옹호하는 쪽은 조선인 행세를 하는 쓰치다를 간첩 내지 일제의 군인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일제의 판결문에도 쓰치다를 육군 중위로 볼 근거가 없다는 표현만 있다는 것을 근거로 그가 일본 제국주의의 첩자이고 또 일제시대 때 기록된 공사관 기록은 그 신빙성을 보장할 수 없기에 쓰치다가 민간인이라 확신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김구를 옹호하지 않는 쪽에서는 치하포 사건을 김구가 명성황후와 상관없는 일본 민간인을 죽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치하포 사건이 있은지 10년 후 쓰치다의 후손은 당시 조선정부(대한제국)로붜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배상금을 지급받았습니다. (물론 이는 임오군란 때부터 자국민의 피해에 대해서는 집요하리만큼 보상금을 요구하는 일제의 특성도 감안해야 합니다.) 당시 재정난을 겪던 대한제국은 계속 지급을 미루다 결국 고종의 개인정치자금으로 보상금을 지불하였다고 합니다.

3. 영화 관련 이야기

영화 <대장 김창수>의 메인 줄거리는 치하포 사건과 김구 탈옥 사건을 바탕으로 합니다. 또한 김구의 감옥 수감 생활 중 일부는 105일 사건 이후 김구의 2차 감옥 수감 시절도 반영하였다고 합니다.

영화를 연출한 이원태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이 사건을 다룬 것에 대해 큰 부담이 된다고 이야기하였는데 김구를 이야기하면서 '치하포 사건'을 다루지 않을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앞서 군함도의 예를 의식했던 것인지 영화상에서는 어느 한 쪽의 주장을 편들지 않고 위에 언급한 논란 그대로를 영상으로 살렸다고 합니다. (김구는 쓰치다를 일본 육군중위로 정말로 알고 있고 일본인들은 쓰치다가 민간인인 것으로 말이지요.)

이원태 감독은 이번 영화가 사실상의 감독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본래는 소설가로 <조선마술사>,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등의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역사소설을 위주로 한 저술활동과 함께 2002년에 MBC의 장수 프로그램인 <신비한 서브라이즈>을 제작하였고 이후 영화 제작과 기획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송승헌이 맡은 감옥소장 강형식이라는 역할은 당시 인천감리서에서 김구의 신문을 맡았던 실존인물인 일본관리 와타나베에서 모티브을 얻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와타나베는 치하포 사건 이후 김구를 호되게 심문하였고 이후 15년 뒤인 105인 사건에서도 김구와 재회하였다고 합니다. 허나 당시 인천감리서에 일본관리 외에도 일제에 협력하는 조선인 형사들도 있었기에 일본경찰과 친일파 등 여러 인물들이 합쳐진 모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논란에 상관없이 김구 본인의 기록인 백범일지에서도 '치하포 사건'에 대한 비중이 크고 김구 본인은 이것을 의거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사건을 다룬 이상 논란을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군함도로 역사왜곡 논란을 겪었는데 대장 김창수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이 길을 걸어갈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백범 김구

* 영화를 같이 볼 모임을 찾으신다면 소모임 어플에서 '영화'를 검색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몬스터 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