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디아 Oct 05. 2021

미니멀라이프로 살아보기

꿈은 맥시멈, 가진 것은 미니멈


‘심플하게 산다 (도미니크 로로)’


생각해보면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싶은 동경이 꽤오래전 부터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왜 미니멀리즘을 내 삶의 라이프스타일로 동경하기 시작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시작은 유목민, 나그네와 같은 삶에 대한 경험으로 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국제통상학과에 진학하고 난 후, NGO 활동가가 될 나 자신을 꿈꾸며 마음은 이미 세계여행중이었지만, 현실은 지방대학교의 4인1실 기숙사 한쪽 구석자리가 내 세계의 전부였다.


1학년을 보내고 마지막 학기. 사실 10년도 지난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숙사 생활을 더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되었고, 어쩔 수 없이 학교 앞의 쉐어 하우스에 입주하게 되었다. 잠을 잘려고 누우면 굴러다닐 수도 없을 만큼 좁은 방에서 생판 본 적 없는 룸메이트와의 공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좁디 좁은 방이라 어쩔 수 없이 많은 짐을 보관할 수 없었고, 정말 최소한의 짐만 보관하며 지냈다.

(이 때가 내 인생 가장 우울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좁은 방 한칸이 내 인생의 전부 같이 느껴지고 그것이 끝인 것 같은 생각마져 들게 했다. 학교 생활과 관계의 문제 그리고 나의 진로에 대한 생각이 얽히고 설켜버린 풀지못할 실타래로 느껴지자 모두 그만 두고 싶었다.)

지나보니 초기 우울증 증상이 있었던 그 시절, 기독교동아리를 통해 선교훈련학교(DTS)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나의 존재가 희미한 상태였다. 그저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선교단체 훈련에 참여했다.


26명의 학생들이 숙소에서 함께 먹고 자며 강의기간을 보냈다. 그 전 쉐어하우스에서는 한방에 두명 잤는데, 왠걸, 여기서는 한방에 적으면 4명, 많으면 7,8명씩 함께 사용한다. 물론 방크기는 훨씬 컸지만 서랍장도 한칸씩 나눠쓰고 행거도 같이 나눠써야 했기에 여전히 나의 짐은 캐리어 하나, 작고 소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풍요로웠다. 뭘 먹어도 공허했던 내가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했다.(인생 역대급 몸무게를 찍었다가, 약 4개월 간 8kg이 빠졌다.)


선교훈련 lecture 기간이 끝나고, 한달 간 티벳과 중국 선교를 가게 되었다. 물론 그때도 나의 짐은 그저 배낭 하나.  

배낭 하나로 한달을 살 수 있었다. 사실 그 배낭 하나도 어쩔 땐 그저 무겁게 느껴졌었다. 티벳의 작은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13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고산병까지 왔을 때는 내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들기에 배낭을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그때 생각했다. 한비야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선교훈련학교 이 후 희미했던 내 자존감이 다시 회복되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고, 생기가 흘러넘쳤다. 이 후 나의 꿈과 비전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본격적인 유목민 생활을 시작하였다.


쉐어하우스에서 다시 2년 - 졸업 후 통영으로 돌아가 1년간 방과후 교사와 학원강사 - 일본 단기선교 - 스위스 로잔 3개월 - 여수 3개월 - 스위스 3개월 - 한국(비자문재) - 다시 스위스 1년 - 서울 (취업했지만 출장이 많아서 강원도, 부산 등등 전국을 누비고 케냐까지 다녀옴)

스위스에 있을 때는 학기마다 방이 바껴 3개월마다 방을 이동해야했고, 스위스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1년간 두번의 이사를 했다.

2014년 결혼 이후, 드디어 나의 노마드 인생의 종지부를 찍... 는 듯 했으나, 결혼 후 약 6년간 4번의 이사를 거쳐.. 오늘 지금 이 곳. 효창동 내집 거실 쇼파에 앉아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많이 움직이고, 정말 많이 이동하며 살았다. 캐리어 끌고 세계 곳곳(티벳, 중국, 태국, 인도, 일본.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홍콩, 케냐)을 누볐고, 한국에서도 혼자 여행도 많이 다녔다. 난 기독교인인데 지인들이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그런 삶이 내 몸에 베었는지... 신혼 초 화곡동에서 1년간 한 집, 한 동네에 살려니 답답하고 우울하기 짝이없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안다. 많고 무거운 짐이 얼마나 여행을 힘들게 하는지. 정말 필요한 것들로 꾸려진 최소한의 짐을 꾸리는 기술을 점점 터득하게 된다. 그렇게 캐리어 하나 들고 곳곳을 누비던 내가, 결혼과 육아로 늘어나는 옷과 가구, 가전제품을 바라볼 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 삶도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부모님 집에서 살 때는 단순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이동할 때마다 거추장스러운 짐이 생기는 게 싫었고, 물건 때문에 여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 ‘심플하게 산다’의 저자 도미니크 로로의 인터뷰 중




그간의 여정으로 나도 모르게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내 라이프 스타일로 굳혀져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많은 것을 소유하는 삶이 버겁고 부대꼈다. 그러나 남편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구매하고, 소유하는 것에 어려움이 전혀 없는 “없는거 보단 있으면 좋지”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남편이 뭔가를 새로 집에 들이자고 할 때마다 난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그거 꼭 필요한 거 아니잖아, 없어도 살 수 있어.”



그런데 육아 하면서 그러한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무너졌다. 일단 아이를 낳자마자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모두 알겠지만 출산 후 집은 온통 육아용품이 점령하게 된다. 당장 주방에는 젖병소독기부터 시작해서 이유식조리용품, 분유통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거실은 아기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들로 가득찬다. 옷장 서랍은 아기옷들로 터져나올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물건'들 속에서 살아본 것이 처음이어서인지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할 까봐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육아하면서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기 쉬운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하고 관찰해야하고 나누고 버리며 비워야한닽 결혼하기 전의 나는 어쩔 수 없이 상황상 자연스레 미니멀리스트로 살아야했다면, 결혼 후 나는 이제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여야함으로 의지가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라.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육아하고 살림하고 두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지만 그게 내 욕심이란 걸 결혼 후 몇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미니멀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 강박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종 선망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나를 끼워 맞출때가 있었다. 욜로라고 하면 그게 좋아보여서 욜로세대 처럼 그때 그때 내가 하고싶은 대로 살아야지 했다가, 파이어족이라고 하면 그게 또 좋아보여서 파이어족처럼 당장 은퇴를 미리 계획하면서 살아야지 했다가 동경하는 그 틀에 나를 끼워맞춰 그렇게 살아야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때도 있었다. 어쩌면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는 것 또한 한때는 너무나도 자연스레 그렇게 살았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살아야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는 착각 속에 부담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계속해서 그 틀에 나를 맞추려할수록 내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불안했었다.




이제는 그 강박에서 벗어나서 그냥 그 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비우고 정리한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니까.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할수 있는 한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필요없는 것을 나누고 비우는 것은 물리적으로 심플하게 내 주변 공간을 넓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가진 것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주변을 돌아보고 내 마음과 생각도 돌아보게 해준다. 그 과정을 통해 다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소풍’



기독교인인 나는 스스로를 천국 고향을 두고 이 땅에 여행 온 여행자, 천국 노마드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면 시간이 소중해지고, 또 함께하는 동행인이 소중해지는 듯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들이 소중해지고,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소중해진다. 부수적인 것 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에 행복해하는지 계속 들여다 보아야한다.



한동안 애청하던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신애라씨 처럼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힘들지만,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보게 된다. 몸과 마음을, 그리고 나의 하루를 어떻게 하면 더 심플하게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글을 쓰면서 나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러면서 나에게 가장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게 되는 듯 하다. 많은 구독자, 많은 좋아요는 본질이 아님을 기억하고, 나의 우주를 가꾸기 위한 행복한 글쓰기가 되길 바란다.



꿈은 맥시멈으로 가지고
짐은 미니멀 하게 가지자

Simple is the best.

모처럼 심플했던 주방. 맨날 이러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청년수당 받는 엄마, 청년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