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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 Oct 10. 2021

셋째를 가질 수 없는 이유

이제 나쁜 엄마 아니고 싶다.


이혼한 부모님 아래 1남 1녀 장녀로 자란 나는 명절날 바글바글한 가족모임을 다녀와 세뱃돈 받았다며 지폐를 펄럭이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웠다.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손에 자란 엄마는 형제도, 부모님도 없이 자랐고, 할머니는 내가 유치원때 돌아가셔서 명절 날 찾아갈 외갓집도 없었다. 명절이라고 집에서 명절음식을 해먹은 적도 없고, 그저 명절은 외식하는 날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4남매의 막내고, 어머님은 말로만 듣던 10남매의 차녀시고, 아버님은 3남매의 차남이셨다. 명절이 되면 산적도 굽고, 전도 부치고, 큰집에 가서 인사도 하는 정말 명절 같은 명절을 보내며 자랐다.


나는 그런 남편이 부러웠고, 나도 아들 딸 가리지 않고 4명을 낳겠다고 생각했었다. 둘은 뭔가 외롭고, 셋도 아쉬운것 같고, 4명 정도는 되야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잘 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앞길이 어떨지도 모르고.



첫째가 태어나고 얼마 안되서 몸에 울긋 불긋 뭐가 올라왔다. 대학병원에 갔더니 아토피는 아니니 로션을 잘 발라주라고 했다. 유명하다는 병원을 돌며 치료했지만 아이의 예한 피부는 날로 심해졌다. 결국 진물이 뚝뚝 흐르는 사태까지 벌어져 병원에 입원치료도 해야했다. 알레르기 검사도 하고, 화폐상 습진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아 가려야하는 음식이 많아졌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필요한 달콤한 간식들, 시중과자, 기름진 음식, 소화가 잘 안되는 음식은 절대 차단해야했고 심지어 김도 먹일 수 없었다. 김을 먹으면 변비가 와서 아이의 소화불량이 피부를 더욱 간지럽게 했다.  자연치유다 뭐다해서 약탕도 끓여줘보고, 소금물도 먹여보고 약국에서 좋다는 약도 다 먹여보고 심지어 다슬기를 사서 끓여 먹여보기도 했다.


밤마다 피와 진물로 뒤덥힌 아이의 피부를 보고 있자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백, 수천 번 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의 알러지 체질을 그대로 물려준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나도 어린시절 아토피를 겪었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지 알았다. 그 시간들이 너무 괴로워 둘째를 가져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도... 혼자는 너무 외로울 것 같아.’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둘째를 임신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첫째의 피부를 어떻게든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싶어 무척 애를 썼다. 그런데 그게 내 맘대로 될리가 있나. 대학병원을 통원하며 열심히 치료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이 방학동안 리모델링을 했다. 리모델링이 끝나자마자 등원을 시작한  첫째의 피부는 마치 화상을 입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새집 증후군 그렇게 무서운 것인  그때 처음 알았다. 페인트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몇달 동안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했다. 피부 때문에 한시도 마음 놓일  없는 첫째와 갓난 아기인 둘째 둘다 돌봐야 했던  몇달은 나의 잠을 완전히 반납해야했고, 정신력으로 버텨야했다. 결국  몸도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에는 수포가 가득차올라 진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눈이며 목이며 열이 뻗히듯이 올라오며 발진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 돌보느라 나의 체력과 면역력이 바닥이  것이다. 설거지 하기도 힘들정도로 손이 엉망진창이었지만 독박육아인 나를 도와줄 이는 없었고, 오롯이 혼자 해내야했다. 그냥 빨리  시간들이 지나가길 기도하는  밖에 없었다.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 .. 둘째 피부가 이상하다. 언니와는 다른 양상이지만 둘째도 매우 민감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쉽게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계란을 먹고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알러지 검사를 하니 10개가 넘는 알러지가지고 있었다. , 마늘, 흰살생선, 참깨, 계란, 견과류 등등 ... 도대체  먹으라는 건지... 크면 낫겠지 하고 버텼는데 올해초에 새로 한 알러지 검사에선 20개가 넘는 알러지가 발견되었다.  심해진 케이스였다.  먹던   까지 알러지로 바꼈다. 사과, 오이, 감자 같은 것들...  

 


마트에 장 보러가면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뭘 사야하나.

알러지 있는 음식 피하지 말고 그냥 먹어야 낫는다며 유난떤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식 먹여보면 그런 말 안나올텐데. 밤에 수 차례깨어 울며 긁어대는 자식을 보면 그런 말 안나온다고. 괴로움의 0.1%라도 줄여주고 싶은게 엄마 마음이니까...


- 엄마 ~ 먹으면 안돼?

- 안돼~


내가 이 안돼란 말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거짓말 안보태고 몇 천번 넘게 하지 않았을까싶다. 안돼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의 기분이 좋을리가 없고, 그럼 나도 기분이 안좋다.

앵무새 같이 “안돼”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힝, 나쁜 엄마야!” 하고 돌아서는 딸들이 내 마음을 이해할리가 없으니.



시간이 흘러 이제  8살이 되는 첫째는 약간의 트러블이 남아있긴 하지만 음식을 전혀 가리지 않아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동생이 못먹는거 투성이라 어쩔  없이 자유롭게 먹지 못할 때가 많아 안타까울때가 있다. 그래도 몰래몰래 챙겨주는데, 동생에게 들킬까 숨어서 먹는 모습이 많이 안타깝다.



최근 가까운 지인이 셋째를 가졌다. 뭔가 부럽기도하다. 나도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셋째를 가졌을까? 생각해보니 대답은 ‘yes’이다. 아이들이 주는 기쁨과 행복은 우주만큼 크고 놀라우니까... 그런데 현실은 ‘No’이다. 이제 그만 나쁜 엄마이고 싶다. 이제 그만 마음 아프고 싶다...



둘째도 자라면서 점점 면역력이 올라가고 좋아질거라 믿고 있다. 첫째를 보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셋째를 가지진 않을 것 같다. 아이는 두명이지만, 아이 셋 있는 엄마 못지 않게 나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살아야지...

여기까지가  최선이고,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우리 딸들 내가 평생 아끼고 사랑할게,

언젠가 우리도 맥도날드나 피자가게에서 먹고 싶은것들 마음껏 먹으며 웃을 날이 곧 올거야.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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