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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 Oct 13. 2021

여성 이동 독립권을 찾아서



 30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나는
아직도 운전 면허증이 없다.


 이래저래 핑계를 대보자면 혼자 살 때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원래 버스타고 기차타고 다니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리스크가 많은 자차 운전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린시절 내 고향 통영은 작은 소도시였기 때문에 버스 한 번만 타면 정말 멀어 봤자 3-40분 내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다닐 수 있었고, 그리고 웬만 한 곳은 걸어서 시내 안에서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이 면허취득의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결혼 하자마자 나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운전면허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하고 두 달 뒤 바로 임신을 했는데 당시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니며 출퇴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오마이갓, 아침 출근 버스는 항상 만차였어서 옆 사람의 가방이, 팔 뒤꿈치가 내 배를 쿡쿡 찌르는게 아닌가 ... 그리고 당시 내가 타고 다니던 지하철은 지옥의 9호선... 초산이라 배가 그리 많이 나와있지 않았던 나는 쉽게 자리 양보를 받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큰 스케일은 아니었지만 위험 천만 했던 버스 사고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때서야 나는 면허를 따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한탄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장 뱃속의 아기를 데리고 바로 면허 취득을 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출산 후에 따야지 했으나 누구의 도움없이 아이를 돌보는 나에게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시간을 내는 것 조차 사치였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거나, 마트를 가야한다거나 할 때 다시 한 번 나의 뚜벅이 라이프를 한탄하게 되었다. 가끔 택시틑 타고 이동하기도 하지만 아기띠에 기저귀가방에 이유식에 짐들을 들고 다니며 움직이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었기에 남편이 운전을 해 줄 수 있는 날이 병원 가는 날이오, 마트를 가는 날이 되었고 그러한 생활이 익숙해지자 운전면허 취득은 나의 버킷리스트로 남게 되었다.


 첫째를 출산하고 돌 조금 지났을 때 남편이 이직하면서 제대로 된 독박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밤낮 없이 일했고 쉬는 날도 반납하고 일해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나는 운전 면허를 딴다는 것이 먼나라 이야기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이기에 지레 겁 먹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운전하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편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면허를 따는 일은 미루고 미뤄졌고 시간이 흘러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하게 되면서 다시 운전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둘째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남편 직장이 다시 바뀌면서 어느 정도 쥐꼬리만한 자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숨겨두었던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너무 많아졌다. 이에 운전에 대한 욕구가 정점에 이르기 시작하여 호기롭게 학과 시험까지 마쳤다. 그러나 끝날 듯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 시대에 운전을 해서 갈 곳들이 없어지기 시작하자 운전에 대한 김이 팍 새버렸고 다시 그자리에 정체.



 운전에 대한 욕구를 다시금 불지핀 계기는 딸 아이의 등하원 때문이었다. 차량지원이 되던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어린이집을 옮기려고 알아보는데 애석하게도 마음에 드는 어린이집은 차량지원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고민이 엄청 많이 되었지만 딸 아이의 교육을 위해 등하원을 책임지겠다는 남편의 결심 끝에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머지 않아 남편이 새로운 석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어 아침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거나, 직장에서 아침 일찍 회의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어 여러번 아이의 등원이 늦어지거나 취소되는 일이 많아졌다. 안그래도 새로 어린이집을 옮겨 정착하려면 꾸준히 규칙적인 스케줄로 등원하는 것이 필요한데 잘 되지 않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남편을 원망하지는 않지만 더이상 운전 면허를 미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면서도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투브에서 '차 좀 타본 언니들'이 나와서 여성의 운전에 대한 주제로 한 인터뷰를 보게되었다. 거기에 나온 한 여성분이 '여성 이동 독립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남편에게 운전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자체를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엄마가 자동차를 운전함으로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고 자유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다시 나의 주체적인 삶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남편 껌딱지가 되어가는, 남편 없인 손발이 묶여버린 것만 같았던 나 자신에게 자유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옆 동네에 살던 절친한 언니가 근 한시간 거리로 이사 가고 나서 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속상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거리에 제한적인 나의 관계들에 대하여.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업을 시작하려고 학교를 알아보면서도 어디가 더 대중교통으로 가까운지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도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지난 겨울 다시 면허를 따기 위한 실천으로 비대면 운전면허 연습장을 다녀왔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버스를 타고 면허장으로 가는 길은 강추위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롱패딩에 모자까지 둘러쓰고 중무장해서 나갔지만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지는 추위를 느끼면서 면허를 꼭 따리라 더 다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중간에 들러 마트에서 장을 보고 한 짐을 들고 버스 타고 내려 경사진 집으로 올라가면서 또 한 번 다짐 했다.



“면허 내가 따고 만다.”



그러면 지금 나는 면허를 땄을까?

내가 생각해도 대박인게 나는 아직 무면허이다.

여러 핑계 아닌 핑계를 댈 수 있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결론은 나는 필기 유효기간을 넘겨,

지난 주 다시 필기를 쳤다...

쇄골뼈가 골절된 남편으로 인해,

다시 무릎을 치며 면허 안딴, 못딴 나를 한탄하며...


내년엔 첫째가 초등학생이 된다.

정신차리고 면허따자...

이번 달에 기필코 나의 이동 독립권을 더이상 미루지 않고 쟁취하고자 한다. ㅠㅠ


운전 후 펼쳐질 나의 새로운 세계를 기대하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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