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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언니, 승무원 언니의 동생①

다른 하늘 아래 있지만 뗄레야 뗄 수 없는 유전자를 공유한 자매 이야기

by 피스타치오 재이

# 01. 언니의 지금

모바일 메신저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인사처럼 묻는 질문이 있다.

“지금 어디야?”와 “지금 몇 시야?”다.

나는 자고 일어나 전화하지만 그녀는 자려고 누운 밤 한가운데 있는 경우가 다반사.

“지금 어디야?”의 대답은 하나같이 기상천외하다.


“탄자니아”


응?


“스리랑카”


응?


“오멘”


으악


언니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매일 다른 나라에 있다.


# 02. 언니의 마실

다음 주 휴가에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비행 편을 알아봤지만 예약이 넘쳤단다. 언니의 티켓은 대기 티켓이라 손님이 많은 이런 경우는 공항까지 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튕기면 암스테르담에 가려고. 거기 지금 튤립 축제해.”

무슨 일산 킨텍스에 장미축제 보러 가듯이 말하네.

“여기 진짜 커피가 맛있긴 하다. 맛집을 찾아간 것도 아니고 호텔에서 그냥 커피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데도 엄청 맛있어.” 탄자니아에서 대표 수출 품목이 커피일 정도면 시골 마을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마셔도 맛있는 수준 아니겠는가.

“지금 옥토버 페스티벌 기간인데 뮌헨 안 올래? 나 이번에 뮌헨 비행 있으니까 거기서 만나자.”

맙소사.

허세로 들릴 수 있는 이 상황이 그녀의 일상이다. 실제로 매일매일을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나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라고 생각하다가 순간 이것이 일반적인 대화는 절대 아니구나를 느낀다.

언니는 버스 타듯이 비행기를 탄다. 다른 동네 가듯이 다른 나라에 간다.


# 03. 승무원 가족이란 1

항공기가 추락하고 부기장이 의문사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 공항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슴이 철렁한다. 어느 나라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어느 나라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내 언니다. 점점 잦아지는 비행기 사고와 위험 지역을 오가는 비행 노선 때문에 괜한 걱정을 하고 만다.

“언니 이번에 비행기 사고 소식 들었어?”

“어어, 야, 그거 항공기 진짜 오래된 거야. 그 항공사 노후된 비행기 너무 많이 갖고 있어. 우리는 매달 비행기 사. 돈 진짜 많은 거 같아.”

“사고 난 거기 말이야. 이름도 꽤 있는 항공사면서 왜 그런대”

“그러게나 말이야. 우리 항공사는 아직 사고한 번 안 났어. 테러도 일어나지 않는 나라니까 걱정하지 말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더 항공사 자랑이다. 그렇게 유니폼 촌스럽다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 04. 승무원 가족이란 2

하늘에 비행기가 보일 때면 아빠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본다고 하신다.

‘우리 딸도 지금 어디에선가 저렇게 하늘을 날고 있겠지.’

몰랐다.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하고 투박하기 그지없는 아빠라 그런 생각을 하실 줄은.

그저 엄마로부터 어느 날인가 전해 들은 이야기다. 비행기가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본단다.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빠의 마르고 야윈 어깨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본 것 같아 코끝이 찡하다.


# 05. 언니의 한국 방문

언니가 한국에 오면 통과 의례처럼 반복되는 행동 패턴이 있다.

1. 현관문을 열자마자 캐리어를 내던지고 처음 던지는 말

“야, 치킨 시켜”

2. 다음날 아침은 무조건 엄마가 만든 된장찌개.

3. “동생아, 내일 오전에 미용실 예약해 두었다. 같이 가 줄 거지?” 한국 방문의 메인이벤트. 미용실 가서 머리 하기. 머리만큼은 손끝 야무진 한국 사람 말고는 아무 데도 못 맡긴단다.

4. “한국은 옷이 왜케 이뻐? 이 가격에 어떻게 이런 이쁜 옷을 살 수가 있지?”

왜 나의 언니는 자라 Zara의 나라에도 가고 아울렛 천지인 미국도 가면서 한국 오면 그렇게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주문하는 걸까.

5. “엄마, 그 열무김치 좀 싸줘. 고구마 사러 가야겠다. 그거 좋던데 김밥 재료 세트.”

언니는 온갖 식료품으로 마트를 털고 엄마는 냉장고를 뒤져 온갖 반찬을 다 담는다.

“누구 이민 가? 뭐 이렇게 많이 가져가. 또 올 거면서. 너무 욕심내는 거 아냐? 언니 혼자 이거 다 먹겠다고?”

“어. 엄마~ 육개장 만들어서 봉지에 따로 넣어준 거 있잖아. 그거 진짜 유용하더라.”

다이얼 112. 여보세요? 거기 경찰서죠? 여기 집에 도둑이 들어서요.

님아.

그냥 냉장고를 통째로 가져가세요. 집에 도둑 든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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