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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언니, 승무원 언니의 동생 ②

언니는 지구 반대편 하늘을 떠다니는 비행기 안에 살고 있어요

by 피스타치오 재이

# 06. 이중 스파이

상황 1.

“요즘 언니가 연락이 뜸하다. 카톡이 안 와. 바쁜가…”

엄마가 넌지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뜨끔.

이후 벌어지는 생각의 연산 과정.

1. 엄마는 이미 내가 언니와 매일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을 알고 있다.

2. 무언의 압박. ‘언니한테 가서 전해라. 엄마한테 연락하라고’

3. 언니가 휴가 일정이 나왔음에도 집에 안 오고 다른 나라 놀러 갔다는 말을 나는 절대 해서는 안돼.

들키면 안 돼. 꿀꺽.


상황 2.

“요즘 집에 별일은 없지?”

언니가 대뜸 물어본다.

뜨끔.

내 머릿속 생각의 연산 과정.

1. 언니는 집에 별일이 있음을 알고 있다. ‘별일 없을 집이 아닐 텐데?’

2. 무언의 압박. ‘얼른 얘기해. 최근 아빠랑 엄마가 다투는 화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3. 언니가 당장 결혼할 생각이 없고 한국에서 살 계획도 없다는 얘길 했다가 큰 소리 났다는 말을 나는 절대 해서는 안돼. 들키면 안 돼. 꿀꺽.

이중 스파이는 오늘도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기 바쁘다. 괜히 먼산만 바라본다.


# 07. ‘바빠’의 의미

띵동. 카톡이 온다.

<@@아, 바빠?>

보자마자 답문 날린다.

<싫어, 안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 줄 알고?>

<인터넷으로 뭐 주문해 달라고 할라 했잖아>

<헐, 소름. 귀신이네>

눈치는 타자보다 빠른 법이다.

인터넷으로 또 어디서 얼마나 좋은 걸 봤길래, 한국 올 계획도 없으면서 뭐 이리저리 사놓기만 하는 걸까.

에혀.


그리고 며칠 후

<언니, 바빠?>

보자마자 답문 날아온다.

<대가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 줄 알고?>

<돈 빌려달라고 할라 했잖아>

<헐, 소름. 귀신이네>

언니의 한국 송금 내역은 내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오기 때문에 통장의 일거수일투족은 내 손바닥 안이요. 언니의 비자금은 마치 내 돈 같은 느낌이랄까.

‘바빠’의 뜻을 귀신같이 냄새 맡은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피를 나눈 자매다.


# 08. 지인인 듯 지인 아닌, 지인 같은 너.

그 있어. 우리 회사 승무원인데 블로그에 웹툰 올리는 승무원. 어찌나 부지런한지 그걸 어떻게 다하나 몰라. 저번에 회사에서 마주쳤는데 나도 나도 모르게 인사했잖아. “어머~ 안녕하세요~~” 매번 블로그에서 얼굴을 보니까 너무 익숙한 거야. 미쳐~

근데 인사하고 나서야 깨달은 거야. ‘아는 사람이 아니고, @@승이잖아!!’ ㅋㅋ

그 사람이 “예예~ 근데 우리 비행 같이 했었나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네네^^”

이러고 사라졌어 ㅋㅋㅋㅋㅋ


“나도 그런 적 있어. 자주 가는 인터넷 쇼핑몰 촬영을 도산공원에서 하고 있는데 모델한테 아는 척할 뻔했어. 나도 모르게 반갑더라고”

ㅋㅋㅋㅋ

티비에서 연예인을 자꾸 보다 보면 아는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낀다고 하더니. 딱그 상황이네 ㅋㅋ

멀리 있어도 수다는 끊길 줄을 모른다.


#08. 다른 나라에서 날아온 엽서

언니에게서 차곡차곡 엽서가 날아온다.

<지금 이곳은 ‘북유럽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스톡홀름이야. 코펜하겐과 스톡홀름은 자기네가 스칸디나비아의 중심이라고 서로 우겨. 웃기지? 엊그제는 코펜하겐에서 엽서를 보냈는데 오늘은 스톡홀름이네….>

어쩜 이렇게 촌스러운 엽서만 골라서 보내는 걸까.

거기서는 괜찮아 보이는 관광지 엽서가 한국에서 받아오면 그렇게 촌스러울 수가 없다. 마치 그 도시를 가장 많이 닮은 마그네틱을 관광기념품으로 사 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보면 어디다 갖다 놔도 튀는 느낌처럼 말이다.

그렇게 도시의 풍경을 담은 그림엽서를 함께 또 다른 볼거리는 바로 우표다. 우표와 통관 마크(?)쯤 되는 우표 위의 도장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엽서를 받아 보면 나 역시 답장을 해주고 싶다.

그러나 언니에게는 주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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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엽서가 도착하면 엽서 사진과 가장 닮은 국내 그 어딘가를 찾아 엽서 후기 사진을 찍어 보낸다. 잘 받았다는 증표로. 엽서를 받았던 내 마음처럼 내가 보낸 그 사진을 받았을 때 언니 또한 반가울 수 있게.

그래도 엽서를 부칠 수 있는 수신 주소가 없어 속상할 때가 있다.

마치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기분이랄까. 질문을 받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기분이랄까.

누군가 언니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고

내 시간 속에 언니를 생각하는 그 잠깐의 시간을 언니에게로 날려 보내고 싶은데

나는 그 기분을 가질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은 속상하고, 주소를 갖고 있지 않아 속상해할 언니를 생각하며 그 속상함을 속으로 삼킨다.

대신 언니가 한국에 잠시 들렸다가 다시 돌아갈 때, 언니의 짐 속 어딘가에 편지를 숨겨놓기도 한다. 언니가 비행기에서 읽는 책 속에. 잠깐 책갈피인 척 하고.

‘비행기 안에서나 아니면 다른 비행 도착지에서 발견하겠지’라고 내심 기대를 하면서.

별거 아닌 엽서지만 그렇게 자매는 서로를 생각하며 다른 나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엽서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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