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첫 만남은 별로 좋지만은 않았다.
#1. 현실 너머의 나
무심함의 결정체.
그 나이 또래에게는 발견하기 힘든 무심함.
무관심
통달
스무 살이 지날 때 즈음이었던가. 친구의 연인이었던 그를 만났다. 그 자리는 쳇바퀴 돌듯 몇 주가 지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 몇 번째쯤에 그가 있었다. 낯선 것도 있었고 으레 퉁명하고 반항기 어린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화사한 환영따윈 없었다. 우리도 그랬지만 그 역시 친해지려는 낌새 하나 없었다. 서로 대면 대면한 상황. 그래도 나는 잘 대해 주려 말도 걸었던 것 같은데...
그러나 그 당시를 기억하는 그에게 내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나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나였다.
“다른 애들은 그나마 관심이라도 있었지. 너는 진짜 세상 아무것에도 관심 없다는 태도였어. 왜 나왔나 싶을 정도로 그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니까. 있기 싫은데 나온 사람 마냥. '쿨한척 그래 보이려고 한다'던지, 아니면 '억지로 살갑게 대하고 친해지려 한다'던지 하는데, 너는 둘 다 아니었어. 그 나이 또래에는 갖지 않는,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것이었어. 육체는 이곳에 있는데 마음은 여기 없는 것 같은 무심함. 나는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어. ‘뭐 저런 애가 다 있나’ 싶었다니까.”
최근의 어느 날 그가 말해준 나의 ‘첫인상’이었다.
#2. 바짝 날을 세우던 너
샛노란 머리를 한 새하얀 너는 길을 헤매는 새끼 고양이 같았다.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짧은 털을 바짝 세워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 것처럼 보였었다. 그렇게 굴러먹은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친해지면 안 그러겠다 싶긴 했지만, 우리는 친해질 만한 상황에 쉬이 놓이질 않았다. 친구의 연인인 너와 그 연인의 친구인 내가 친해질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모두 함께 여행을 가면서, 혹은 서로의 관계가 틀어지고 변화해 다른 역할로써 서로를 만났을 때 즈음이었나. 아주 조금씩 틈이 벌어져서 그 안으로 서로가 들어갔는데, 내가 생각했던 너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아이였어. 느긋하고 여유롭고 남에게 관대하고. 어쩜 이런 애가 그런 모습을 일 년여를 보여줬던 걸까. 내가 너를 아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너 역시 내가 그러하였나. 나는 항상 그렇게 무관심인 태도로 일관했었나. 나는 모른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러려는 의도는 하나도 없었으니, 알 길이 없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그 당시 나는 눈이 텅 비어있던 것일까. 자꾸만 이 세상 너머를 꿈꾸고 있었다. 그 뒤편에 무언가 있는 것만 같아서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했으니까.
#3. 진짜일까, 그것들은
지금은 밤에 불러내 술 한잔 기울이며 시시껄렁한 농담과 어줍지 않은 진지한 이야기를 뒤섞어 안주 삼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오늘과 내일을 격려하는 그런 사이. 힘든 일 있거나 사랑에 관해 투정 부리고 싶을 때,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바보같은 천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 우리는 결국 이렇게 될 거였는데. 그 시절 그렇게 멋진척하고 서로에게 빗장을 걸어 잠겄던 게. 하지만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럴 거 같아. 그때 우리의 세상에는 그것이 정말 전부였으니까.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모습을 예상했을까.
있잖아. 나는 그때 너를 처음 만났던 그곳과 그 빌딩을 나와서 어느 골목으로 걸어가며 너에게 말을 걸었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나. 어디 사냐, 얼마나 걸리냐, 같은 정말 별 볼 일 없는 질문과 별 것 없는 기억인데, 스치듯 잠시, 너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잘 맞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어. 어쩌면 말이야. 오늘의 너와 나의 모습을 그려냈을지도 몰라. 아주 조금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