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을 모릅니다만

행복의 비밀

by 고요의 향기

지난 토요일 서울 집회에 참여하러 버스에 몸을 실었다. 3월이라 신학기는 바쁘고 생전 걸리지 않던 감기와 목을 많이 쓴 흔적이 몸에 남아 장거리 집회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걸어갈 수 있으니 가야지. 도로가 깡깡 얼었던 날도 갔고 수많은 인파에 막내를 잃어버린 뒤에도 갔다. 지난주에 예정된 가족여행이 며칠 전 취소되었고 아무 일정 없는 날에 그냥 쉬자고 이 중요한 일을 놓칠 수는 없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배겨진 생각이었다. 버스 좌석이 남아있는지 타진하고 이번에는 둘째 아들을 데리고 갔다. 다행히 봄이었다. 날이 흐리긴 했지만 엄청 춥거나 땀이 나도록 덥지 않은 날에 거리를 걷거나 앉아 있는 것은 나들이나 다름없었다.


버스 좌석 저편에는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을 것 같은 다른 동행자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어디서 뵌 것 같기도 한 선생님이라 먼저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그분이 먼저 알은체를 하셨다.

"아드님과 같이 오셨군요? 혹시 현성이?"

"아니요. 둘째입니다. 근데 현성이를 어떻게 아세요?"

그리곤 "아. 저는 현성이를 노서에서 가르친 적 있는 음악선생입니다." 하신다.

오, 귀가 훅 거기로 향한다. 누구나 첫 아이에 대한 느낌은 크다. 둘째의 선생님이었다면 그냥 그렇구나 할 일도 첫째와 관련된 사람이면 유독 더 크게 반갑거나 신경이 가는 것도 누구나의 편견이긴 하겠지만 내리 두 아이에겐 아쉬운 일일 수 있다.

"그랬군요. 현성이가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을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선생님이실 수도 있겠군요."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떠올리며 괜히 한 마디 덧붙인다.

"아닙니다. 요즘 중학교 선생님은 겸무가 많아서 매년 바뀌기 때문에 제가 그 선생님은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게 첫인사를 하고 둘째도, 막내도 노서중학교니까 음악을 가르치셨을 수도 있고 앞으로 가르치실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으며 웃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봤을까? 얼굴은 언젠가 꽤 오래 본 얼굴인데 세밀한 정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은 간혹 있어왔던 일이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 대해 큰 차이 없이 대하는 평등주의 가치관이 사람을 잘 인식하지 않는 습관에 편승해 더 강화된 것 같다. 평소에는 누구든 잘 아는 사람처럼 반갑게 대하고 자주 만난 것처럼 허물없이 대하기 때문에 내가 혹여 기억을 잘 못하더라도 그 사람은 자기를 알고 있는 듯이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특별한 인연이니까. 옷깃만 마주쳐도 오백생 인연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냥 사람이란 말만 들어도 코끝이 찡해올 때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함께 동행하는지라 나도 모르게 물음이 올라왔다.


"혹시 우리, 어디서 따로 보지 않았나요?"

"우와, 선생님. 진짜 너무 하시네요.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서 따로 묻지 않았는데요. "

"네?"

"제가 선생님 시를 직접 작곡하고 그걸 다른 성악가에게 부탁해서 노래까지 불러 발표회까지 했는데요. 그 시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아는 가장 수준 높은 성악가가 선생님 시를 노래로 부르면서 이 곡이 가장 맘에 든다고, 시도, 노래도 궁합이 잘 맞는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는데요. 그때 시디를 만들어 나눠드렸을 텐데 도대체 선생님, 저처럼 안면인식장애가 있으신 것은 아니시죠?"


세상에. 그랬구나. '저처럼'을 붙이지 않았다면 내 상태를 의심하며 걱정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냥 옛시를 오랜 지인을 만나는 듯 다시 만날 수 있는 기대감도 슬쩍 올라오고 시를 썼던 날이 있었다는 지난 추억의 시간을 누리는 신선한 느낌, 마지막으로 노래하는 분이 가장 좋아했던 시와 노래였다니 저 다부진 입술에서 괜한 너스레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아서 약간의 감동이 나직하니 올라왔다. 그 말씀을 들으니 어렴풋이 아지랑이처럼 엇비슷한 기억이 올라오는 것도 같다.

시나 글을 쓰면 그것이 내 것이라 생각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20여 년 이상을 쓴 시도 내게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면 그 순간 그 자체로 내 몫을 다한 것이고 그 후에는 그 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언제든 꼭 필요한 순간이면 저절로 기억이 나는 것을 알고 있다. 아주 오래전 제자가 인사를 할 때 전혀 기억에 없던 아이 이름이 '누구야, 안녕' 하고 불쑥 떠오르기도 하듯이 말이다.


"아. 선생님.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명료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시를 쓴 본인보다 그 시를 더 사랑해 주시고 작곡까지 해주시고...... 노래를 불러 발표회까지 애써주신 그 노고에 감사드려요. 시디를 어떻게라도 구해서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


선생님과의 잠깐 대화로 사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호감도가 쑥 올라갔다. 그래, 어쩌면 내가 마주하는 이 많은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그렇게 기여해 주신 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가 모르고 있거나 기억을 못 하고 있다는 것뿐. 뿐만 아니라 감사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와의 만남이 너무도 무딘 만남으로 폄하될 수도 있고 눈앞에 보이는 잠깐의 걸림으로 도리어 배은망덕이 될 수도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니 부지런히 감사를 기억하고 떠올리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왔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던 즈음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다. 쌀이 떨어져 쌀집에 전화할 겸, 같이 사겠는지 묻는 전화다. 통화 끝에 감사의 한 마디를 얹었다.

"엄마, 그동안 따뜻한 엄마밥 정말 많이, 그리고 맛있게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 "

"그래, 우리 딸. 사랑한다. 나도 고맙다."

사는 동안 할 일은 고마움을 전할 일밖에 없는 것 같다. 가슴이 봄새싹처럼 몽글몽글 살아 오르고 코끝이 찡해온다.


ps. 오래 전 노래로 불러주신 시디를 구해서 시를 들어봤다. 그리고 오랜 지인을 다시 만나듯 필사해서 올려본다.


숲길


산허리를 돌면서

온갖 초록빛깔 들이마신다

갓 태어난 보드라운 연두빛

먼 산 희끗희끗한 하늘빛

나뭇잎따라 흔들리는 짙푸른 여름빛,

갖가지 숲 속 초록을

온 몸으로 흠뻑 마시고 나면

그제서야 살 것 같다

그제서야 살 것 같다


말랑말랑한 초록벌레 한 마리

숲에 가만히 기대어 쉰다

엄마품에 고이 안긴 내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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