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거리는 마음에서 벗어나기

인간의 의식

by 고요의 향기

어느 날엔가, 한 번씩 만나던 지인에게서 이런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이 출렁거려서 힘드는데 어떻게 좀 벗어날 수 없겠냐는 하소연이자 물음이었다.


20대 후반 즈음인가 한창 성공과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무렵에 한 선각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는 삶을 향해 달려가려는 호르몬이 강해 십 년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를 상상하고 비전을 세우던 시기였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에 촌각을 세우던 무렵, 그 선각자와 서로의 인생의 목적에 대해 나누던 순간이 있었다. 내 대답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분의 대답은 아주 명료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분은 마음의 평화, 아무 조건 없는 마음의 평화라고 답하셨다. 뭐, 마음의 평화. 그건 언제든 마음먹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얻고 말고 할 것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의아했다. 그러나 그 이후 그 선각자의 그 꿈은 나의 꿈이 되어 지금까지 30여 년을 그 꿈에 대한 설렘과 감동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 문득 그 지인과 선각자는 같은 물음을 묻고 있었고 그것은 또한 내가 오래도록 묻고 찾아온 이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그 물음에 대한 일단의 대답을 가슴속에서 길어 올려보고자 한다.


마음의 출렁거림에서 벗어나는 길은 천하 모든 것이 스스로의 의식일 뿐임을 아는 것이다. 저쪽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저 존재가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이 의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아는 것이요 곧 대상화된 의식으로, 의식의 분리를 멈추는 것이다. 어떤 감각으로부터 그려진 마음의 대상화, 그리고 그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다. 마치 영화관의 영화가 펼쳐지는 그 바탕에 있는, 어떤 영화가 흐르는지에 아무 관계없이 그냥 그렇게 배경으로 있는 그 빈 막, 바로 인간의 의식 중에서도 순수의식이라 할 수 있는 그 빈 막은 영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서도 늘 현전하는 실존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 쏙 빠져있을 때에는 빈 막은 아득히 사라지고 영화가 사실처럼 다가오지만 영화 사이사이에, 혹은 영화가 시작되거나 끝날 무렵에 늘 보이는 그 빈 막 같은 의식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아니, 영화에 쏙 빠져있을 때에도 언제나 그 영화를 이루는 내용물이 본질적으로는 그 빈 막과도 같은 의식임을 아는 것이다.


마치 바다의 파도가 아무리 현란하게 차올라도 그 파도의 본성품은 물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결국 영화 안과 밖은 의식과 의식이라는 같은 본질의 성품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영화 속 이야기들이 결국 의식이 그리는 파도의 춤과도 같은, 자신과 동떨어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독립된 객체가 아닌 동질의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동질의 존재들이 그저 함께 어우러지는 춤인 줄 알게 되면 그 무엇도 나와 다른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없기에 그 대상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란 존재할 수 없고, 그 세상에서의 현상을 그저 파도를 타듯 혹은 춤을 추듯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출렁임이란 결국 그 파도를 탈 수 없어서, 세상과 함께 춤을 출 수 없어서 일어나는 밀어냄과 당김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스스로인 줄 알기에 밀어낼 것도 없고 당길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도 자유롭게 이 삶을 누리며 이렇게 더 생생히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고 어느 장에서 깨달은 이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은 실체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나라는 자아의 규정이자 한계로서의 생각일 뿐이기에 나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열린 삶이 얼마나 자유롭게 펼쳐지겠는가.


나라는 규정이 없는 세상, 너라는 규정도, 동떨어진 그 무엇도 없는 세상에서 도리어 괴로울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다만 서로 다르지 않은 존재들을 마주할 뿐인 세상에서 출렁거리는 마음 없이 평상심의 춤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일만 남았을 뿐임을 안다면 어찌 출렁거릴 수 있으랴. 출렁거린다 하더라도 그 출렁임은 기꺼이 추는 춤이다.


세상은 온통 의식뿐이다. 스스로의 의식, 그 속에 담긴 영화 같은 이야기들도 그 본성품은 의식일 뿐이기에. 의식인 스스로를 어떤 부분만 끌어당기고 또 어떤 부분만은 밀어낸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 소외를 낳을 뿐이다. 그리하여 칼 융은 인생의 목적은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했다. 그것은 곧 세상 모든 것이 자신임을 아는 것, 그 자신을 온전히 아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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