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 아야의 '나무'를 읽고
인간에게 저마다의 이력이 있듯이 나무에도 저마다의 이력이 있다. 나무는 몸에 자신의 이력을 표시해서 보여준다. 몇 살인지, 별 근심 없이 오늘날까지 살아왔는지, 아니면 고통을 견디며 인내해 왔는지, 행복하다면 행복했던 이유가 있을 터이고 고통을 겪었다면 몇 살 때, 몇 번, 어떤 종류의 장애를 만났는지 등을 자신의 몸에 전부 기록한다. 또한 그 나무 주변의 사물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함께 간 관계자가 가르쳐주었다. - 나무, 고다 아야
86세의 나이로 별세한 문학가 고다 아야의 나무에 대한 수필집을 읽고 있다. 나무와의 추억을 담은 산문집이다. 그는 어떤 나무를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가듯 어렵사리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함께 한다. 그가 나무를 바라보고 말하는 방식은 나무라는 보편 대명사로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너'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방식이다.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나무도 우리처럼 자연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과 나무의 동질성을 바라보고 함께 하기보다 사람의 도구로서 바라보아 왔기에 나무에게는 사람과 동등한 존재로서의 '너'라는 이름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는 도쿄 에도가와의 절에 있는 소나무, 미에현 스즈카의 전원 속에 있는 녹나무, 후쿠시마현의 도로 옆 밭에 있는 삼나무 등 눈앞의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면서 그 나무의 눈으로 이어지는 다른 나무와 식물의 세계, 그리고 환경과 사람에 대해서까지 그 사색을 이어간다.
더불어 초목을 사랑하는 마음을 딸이나 손주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어 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하고 싶었던 것이고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다.
꽤 오래 전에 연수차 포항의 식물원에 갔던 적이 있었다. 그 식물원장이 '앞으로의 시대는 식물을 알고 느끼고 누리는 사람이 잘 산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단순히 앞으로 식량문제가 대두될 것이고 식물을 잘 먹을 수 있어야 잘 살아남는다는 뜻이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에서 동물보다 식물을 훨씬 더 많이 마주할 뿐만 아니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쉽지 않지만 식물이 우리의 삶에 더 본질적인 존재라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저자처럼 내 마음속에 남은 나무 친구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주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칠보산 자연휴양림 상수리 동 앞에 혼자 고고하게 서 있던 소나무다. 보통 소나무라면 덩치도 어느 정도 크고 줄기의 피부도 결이 굵을 텐데 우리나라 소나무답지 않게 가느다랗고 피부도 여려 보이며 수형 자체가 뾰족하지 않고 둥그리하게 원만해 보여서 무슨 나무인지 이름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일본 해송이라고 쓰여 있어서 신기했다. 칠보산 자연휴양림은 금강소나무 숲으로 유명한데 이 나무는 그에 비해 많이 야리야리하고 둥글둥글한 소나무여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다음으로는 2024년 10월 31일 국가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자연유산 신규 지정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540여 년을 살았던 나무가 우리나라처럼 나무를 뭣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더 살아나가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한아름에 다 안기지도 않는 팽나무를 안아보면서 나무의 오백여년의 세월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나무는 작년 가을에 만난 해남 대흥사의 연리지이다. 두 나무가 저녁 빛을 받아 신비스러운 은빛으로 빛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얼마나 정이 깊었으면 저토록 뿌리에서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연결되고 싶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나무들이 꽤 많이 있다. 아하, 나도 오랫동안 나무를 개체로 만나왔었구나.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대단하고 신기한 나무만 개체로 만나는 오만함이 있었다. 사람 중에서 대단한 사람만 사람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저자는 7000여 년이 넘은 일본의 나무를 만나기도 하는데 일본에는 이렇게 오랜 나무들이 잘 살고 있나 보다. 미시간대학의 한 살림생태학자는 오래된 숲과 수령이 높은 나무가 막대한 양의 탄소를 저장하는 생물다양성의 거점이 된다고 연구논문에서 밝혔다.
오래된 숲과 나무들이 그렇게 잘 살아있는 것은 그 나라에서 그 숲과 나무를 보존하는 관점이 그렇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처럼 폭넓은 관점으로 나무를 바라봐오지 않았다. 다만 건축이나 가구에 쓰이는 수단이나 홍수를 막는 생태적, 경제적 수단 정도로 생각해 왔다. 그 관점이 그 나라의 수준이다.
나무와 숲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점점 더 자연스럽게 밝혀지고 있고 나무가 어머니처럼 우리를 돌봐주고 숲 전체의 건강을 책임지며 우리와 연결돼 있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물론 아직도 밝혀지지 않아 우리가 모르는 나무의 역할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모든 생명의 중심을 어머니 나무에 두고 영화를 진행시켜 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상징일 것이지만 상징 차원을 넘어서서 나무가 하는 역할 자체가 그처럼 우리 존재의 중심에 서 있음이 어느 정도 밝혀지기도 했다.
나는 자주 숲을 맨발로 걷는다. 아침에는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걷고 저녁에 귀가하면 집 뒷산을 맨발로 걷는다. 촉촉한 흙과 나뭇잎을 밟는 느낌과 바위나 돌을 밟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바람이 스치면 나무들이 함께 합창하듯 흔들리는 소리에 나도 함께 흔들린다. 숲 초입부터 영롱한 뻐꾸기 소리는 여운이 길게 울린다. 그에 화답하는 듯 여기저기 우는 새소리 들도 마음을 청량하게 한다.
숲에서 만나는 특별한 친구가 바로 나무다. 안기 좋은 나무는 가만히 안고 있기도 하고 등으로 기대기 좋은 나무는 기대어서 서 있으면 그 자체가 휴식이다. 바라보기 좋은 나무는 보는 그 자체로 듬직함을 준다. 매일 만나는 나무는 어쩌면 그냥 '너'라고 부르기는 아쉬운, 가족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본래 나무는 우리들의 어머니일 것이며 더 나아가 겉모습은 다르지만 우리 자신과 같은 본성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사람을 그냥 사람이라 부르면서 만나지 않듯이 나무를 '너'혹은 '당신'으로, 개체로 마주하는 문화가 우리와 나무를 한층 더 깊이 마주하게 하고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