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의 출가

처음 써본 산문시

by 고요의 향기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유일한 세상인 줄 알았다. 내가 듣고 있는 소리를 모두가 함께 듣고 있는 줄 알았고,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전부인 줄로 믿었다.


렇게 딱딱한 모래알 속에 갇혀 있는 고체 덩어리에 불과했다. 수백 년 동안 그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모래알 하나. 어느 날 자신을 둘러싼 벽을 처음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단단한 벽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서 손을 대보니, 실체가 없는 투명막 아니 환영이었다. 그 벽을 가두고 있던 자물쇠는 사라졌고,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열쇠는 필요 없어졌다. 그 순간, 모래알은 자신을 처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작은 흔들림, 바람 부는 대로 방향을 바꾸는 보잘것없는 알갱이. 이름도 없이 드넓은 바닷가를 이리저리 떠도는 나그네.


그러나 이제 는,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작은 풀잎기도 하고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리는 어린 조개기도 했다. 그 누군가의 세상에서 배경이 되고 주변이 되기도 한다. 침묵 속에서 바라보는 눈, 그 침묵 속에서 길을 잃는다 할지라도 그는 이미 잃을 수 없는 자유를 얻고 빼앗길 수 없는 사랑을 얻었다.



스스로가 보잘것 없어질수록 더 가까이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 스스로를 내치게 만드는 모든 고통이 그 고통만큼 딱딱한 자신을 여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가 만든 세상과 싸우는, 그리하여 스스로가 더 고통받는 일을 멈추고 이제는 그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 하나의 배경이 되고 싶다. 아무 대가가 없어도 존재함 자체가 사랑인, 사랑만으로도 충분한, 그렇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지만 작지 않은 소망을 써보았다. 몇 십 년 전에 쓴 시를, 내가 그냥 잊어버리고 내버려 둔 시를 나의 동반자가 잘 보관하고 있었다. 고맙다. 그는 나의 배경이 되어준 스승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