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온 May 01. 2023

선생병


오늘은 5월의 첫날이자 월요일이다.

시작이 이렇게 딱 겹치는 날은

왠지 더 산뜻하게 느껴진다.

집에서 내려온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앞에 두고,

이 느낌을 음미한다.

이른 아침이라 조용한 학교는 일지 쓰기에 좋다.




지난 주말, 내가 속한 신앙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옥수수를 심으며 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20여 명의 아이들이

기꺼이 밭을 내어준 창녕 형제, 자매님 댁에 왔다.


지역아동센터 소속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아이들 관리나 프로그램 운영은 그분들의 몫이었고,

나를 비롯한 어른들은

그 아이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잘 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치우는

즉 돌보는 일을 맡았다.

그 일을 하면서 나는 정말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상관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소위 선생병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내가 맡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생활지도를 하게 된다.

뛰지 말고 걸어가자.

위험하니 높은 곳에서 내려오너라,

쓰레기 버리지 말고 휴지통에 버리자,

친구와 심하게 장난하지 말자,

화장지 조금만 쓰자,

인사를 잘하자, 소리 지르지 말고 조용히 하자.

바닥이 더러우니 엎드리지 말아라, 등등등.

복도를 지나가더라도

신경은 지나치는 아이들에게 꽂혀서

이런저런 말을 하게 된다.


그게 25년이 넘어가니 이젠

아파트 주변에서도, 길에서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질서를 지키지 않아 위험해 보이거나

조금만 기특한 일을 하면

여지없이 모르는 아이에게조차

주의나 칭찬이 입에서 나오려 한다.


그러니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머릿속이 얼마나 바쁘고, 복잡하겠는가.

또, 말이 나오려는 입에

힘을 줘서 안 나오게 하는 건 어떻고.


그 사정을 알길 없는 성당 신부님이나 수녀님은

직업이 선생이니까

내게 주일학교 교사를 맡아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때가 15년 전쯤이었는데

주일학교 교사를 맡으니

성당에 나가기 싫어져 일 년 만에 그만두고

성당마저도 한동안 나가지 않았다.


주 중에 아이들 간섭하느라

속 시끄러운데 주말까지 노동을 하는,

그야말로 월화수목금금금인 것 같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내게 선생병이 있으며

그 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랬다.

25년쯤 되니 이 선생병은 골수에 박혀서

아이들이 단체로 있는 상황에서는 거의 전자동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 같이

학교밖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행사는 달갑지 않다.


작년 가을에도 비슷한 행사가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감 따기였는데

그때 속으로 북 치고 장구 치느라

내 마음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시작 전에 각오를 했다.

'멀리서, 아주 머얼리서 본다'라고.


나태주 시인은

'가까이 보아야 예쁘고,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했지만,

그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도착한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 나눈 후,

의식적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고구마를 숯불에 구워주고,

컵라면 물을 끓여주고,

 분리수거를 도와주기만 했다.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보지 않았다.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하는 집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함께 하는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속이 편했다. 너무 좋았다.


비 맞으며 동네 한 바퀴 돌기,

옥수수와 고구마 모종 심기 등을 하는 아이들을

멀리서 보니 푸릇푸릇해지는

산과 들과 어울려 아름답게 보였다.


맨발로 모종을 심고, 다독이는 모든 과정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아이들이었다.

뛰어다녔고, 소리쳤고, 모종이 있던 포트에

진흙을 담아 케이크를 만들었다.


장난스럽게만 보이는 그 행동 속에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껴가는 마음이

곱게 다가왔다.


나 역시 맨발로 서서

부드러운 눈길로 아이들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차갑고 푹신한 흙이

마치 깊은 선생병으로  뾰족해진 나의 일부분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나는 직업이 선생일 뿐.

이 세상에서 마주치는 다른 존재는

모두 나에게 친구일 뿐인데.


어쩌면 학교에서 만나는 존재도

친구여야 하지 않을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동행하는 사람.

그야말로 조금 먼저 살아서

친구들이 길을 갈 때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사람.


왔다가 멈췄다가 한 비는,

하루종일 나눈 대화의 주요 등장인물이었다.

처음엔 비가 와서 다들 안타까워했지만

나중에는 비가 와서 특별해졌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처럼 처음에 내게 달갑지 않게 다가왔던 행사는,

밖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서 특별했다.


아이들을 보내고 형제님 집을 깨끗이 치운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그쳐있었다.


먹구름이 물러가 붉게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처럼

내 마음 한 구석에도 선생병이

조금 물러가지 않았을까?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은근한 수업 후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